[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이혜영 기자, 조현의 기자] 미국 백악관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 자국 반도체 부품의 러시아 수출을 금지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 현지에서 자동차나 가전 등 완성품(세트)을 만드는 국내 기업들은 생산 차질을 우려하며 동향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19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들은 최근 미 반도체산업협회(SIA)와의 통화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 글로벌 전자제품 공급에 대한 러시아의 접근 차단 등 새로운 대(對)러 수출 제한을 준비하라"고 말했다.
NSC는 SIA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시 전례 없는 조처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SIA 관계자는 회원사에 이메일을 보내 "NSC는 우크라이나 상황이 '이례적'이라며 모든 옵션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했다"고 전했다.
한 소식통은 외신에 "러시아에 있는 직원들의 정보기술(IT) 보호가 잘 돼 있는지 확인하고 대러 수출 중단을 준비하는 것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비하는) 업계의 준비 과정에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외신은 "백악관이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가 중국 화웨이에 반도체 공급을 차단하기 위해 마련한 '해외직접생산규정(foreign direct product rule)'을 확대 적용할 시 반도체, 컴퓨터, 가전제품, 통신장비, 기타 미국 기술로 만든 전 세계 제품의 선적을 중단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악관 대변인은 NSC와 SIA 간 통화 여부에 대해 사실 확인을 거부하면서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심각한 경제적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다양한 옵션을 동맹 및 파트너들과 검토한다는 점을 그간 분명히 해왔다"고 밝혔다.
SIA는 전날 회원사들과 전화 회의를 열고 NSC와 나눈 대화를 구체적으로 전했다. 협회의 정부 담당자는 이 자리에서 "광범위한 수출통제 조치 가능성에 따라 유례없는 대혼란에 빠질 수 있다"며 "글로벌 공급망에 미칠 파급 효과를 평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전날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WMI)와도 새 수출 제재 관련 대화를 나눴다. 소식통은 "협회는 NSC와의 통화에서 미국 기술에 끼칠 잠재적 영향을 우려했다"고 전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대러 반도체 수출액은 7500만달러(약 890억원)로 전체 수출액(99억8300만달러)의 0.8% 수준이다.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들은 "수출 시장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 반도체로만 국한할 경우 당장 직접적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했다.
대신 완성품에 반도체나 관련 부품이 필수로 들어가기 때문에 미국의 이 같은 제재가 실제로 이뤄질 경우 세트 제조사 입장에서는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삼성전자 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주에 TV 생산라인을 두고 있다. LG전자 도 모스크바 외곽 루자에서 생활가전과 TV를 만든다. 업계 관계자는 "러시아를 겨냥한 미국의 수출 규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단하기 어렵지만 가전이나 스마트폰, 자동차 등 주요 품목에 부품 공급이 제한될 경우 현지 생산이나 판매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삼성전자 스마트폰은 러시아에서 연간 시장 점유율 30% 이상으로 글로벌 제조사 중 1위다.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도 대러 수출액이 지난해 기준 각각 26억4200만달러와 15억900만달러로 주요 수출품목 중 1, 2위를 기록했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경우 현지에서의 국내 완성차 판매 호조세에 힘입어 2020년 하반기부터 현재까지 대러시아 수출이 증가세에 있는 상황"이라며 "미국의 수출규제가 어떤 형태로 되느냐에 따라 강도는 달라질 것으로 보이는데 단기적으로는 한국 기업의 수출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경화 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수석연구원도 "미국의 러시아에 대한 제재 리스트에 미국 기술이 활용된 반도체부터 여기서 뻗어나간 상품들까지 규제 범위에 들 것인지에 따라 한국 기업에 대한 파급도 달라질 것"이라며 "추가적인 발표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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