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日野話] 단양 두악산의 소금무지祭(48)

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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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에 흰 나비 하나가 날아들어 붉은 꽃에 앉으니, 물이 흔들리는지 꽃이 흔들리는지 아니면 나비 마음이 흔들리는지 온통 현기증이로다.""나비가 꽃을 흔들어도 꽃은 나비를 따를 수 없으니, 한곳에 뿌리박힌 제 신세가 문득 원망스러워질 따름이옵니다."

"그렇구나. 사랑이 호접몽(胡蝶夢)이면 그 꿈을 깨는 때가 얼마나 괴롭겠느냐. 나비도 꽃도 되지 말고, 마음속에 향기만 담아 장무상망(長毋相忘ㆍ오랫동안 서로 잊지 않음)하였으면 좋겠구나."

"그렇다 하더라도 화밀(花蜜)을 빠는 호접이 없으면 꽃이 어찌 살아있는 것이겠습니까. 나으리가 돌보아주시는 그 마음에 의지하여 오직 살아있는 것이 소녀이옵니다.""두향아."

"예에. 나으리."

"꽃의 꿀을 빠는 나비가 잠시 날아갈 것이니라."

"아아, 나으리. 저는 눈을 감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 있겠사옵니다."

따뜻한 숨소리가 다가오면서 여인의 입술 위로 다른 입술이 포개진다.

밤공기에 살짝 차가워진 입술이 서로 닿으며 온기를 얻을 때, 물소리는 커지고 사방의 적막은 더욱 깊어진다. 두 사람의 접문(接吻)이 길어지면서 포옹은 더욱 깊어지고, 움직이는 혀끝에서 여인의 입술이 눈 녹듯 열렸다.

훅, 두향의 숨소리가 터지듯 들리며 치마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이요루 목벽(木壁)의 귀를 열게 한다. 계곡 변 대숲에서 뱁새들이 뭔가에 놀란 듯 갑자기 지저귄다. 봄밤이 통째 향기롭다.

 
며칠 뒤 퇴계는 단양향교를 옮기는 공사를 순시했다. 향교는 원래 관아에서 다소 떨어진 마을에 지어져 있었는데 얼마 전 그 인근에 갑작스러운 화재가 나서 향교 일부를 비롯해 온 마을이 잿더미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하방리의 이 마을 이름을 '재깐'이라 부르는 것은 그때부터였다. 마을에 공사를 할 여력도 논의도 없어 방치하고 있던 것이었는데, 퇴계가 군수로 부임하면서 팔을 걷어 일을 시작한 것이다.

퇴계가 무엇보다도 향교 명륜당(학교시설) 건물의 이전을 서둔 까닭은 이 산간벽지의 고을을 깨우기 위해선 학문적인 계몽이 시급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단양향교는 조선 태종대(1415)에 세워진 유서 깊은 건물이었다. 향교가 세워진 이듬해에는 향교 정문인 풍화루(風化樓)가 지어졌다. 퇴계가 부임하던 해 이 건물들은 130년을 넘겨 이미 몹시 퇴락해 있었다.

고을에 큰 학자가 원으로 부임하자, 정식 관원을 갖추지 못했던 단양향교에서는 지역의 생원 중에서 선발한 교도직(敎導職)이 제사과 교육을 맡고 있었다. 유생들은 십여명밖에 남지 않았다. 퇴계는 다시 동몽(童蒙ㆍ16세 미만의 소년)들과 유생들을 모아 30여명의 학생들을 만들었다. 그들에게 틈틈이 직접 사장학(詞章學ㆍ문학)과 경학(經學ㆍ경전과 역사서 공부)을 가르치고 있었다. 특히 소년들에게는 소학과 가례를 공들여 익히도록 하였다.

 
며칠 뒤 퇴계는 단성면 남쪽에 있는 소금무지산(일명 두악산)에 올랐다. 이 산은 단양사람들에겐 진산(鎭山)으로 인식되는 곳이었다. 소금무지산은 풍수적으로 볼 때 화기(火氣)가 있었다. 단양군에서 자주 화재가 난 것은 그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고을 이름인 단양(丹陽ㆍ붉은 태양)에 이미 불이 들어있고, 강바람이 몰아쳐서 붉은 기운을 돋우고 뜨거운 빛을 만들어 불꽃같은 소금무지산을 감아올라 불기둥을 만들어 이 지역에 화재를 부른다고 믿었다.

고을 사또가 산에 오른 것은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서였다. 제사의 집전은 향교의 교도직이 맡아왔으나 이번에는 퇴계가 초헌관(가장 먼저 제사지내는 사람)을 직접 하기로 하였다. 소금무지산 꼭대기에는 비교적 평평한 땅에 큰 항아리 세 개가 묻혀 있었다. 돌을 들어올리고 흙을 파내니 항아리가 드러났다.

그 속에는 소금을 녹인 물이 들어 있었다. 노복(奴僕)들이 들고온 항아리 속의 소금과 물을 다시 부어 세 개의 큰 항아리를 가득 채웠다. 퇴계는 쌓은 제단 앞에 무릎 끓고 천제(天帝)에 술과 차를 따르며 기우(祈雨)와 방화(防火)의 예를 지냈다. 그리고는 소금 항아리를 다시 묻었다. 이 제(祭)를 소금무지제라 부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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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두향의 어깨를 당겨 껴안았다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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