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정세 악화로 국제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정부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에너지 절약 조치 강화에 나섰다. 단순한 캠페인 수준이 아니라 법에 근거한 조치라는 점에서 정부가 에너지 수급 불안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12일 정부와 공공기관 등에 따르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최근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 공공기관 600여곳에 에너지 절약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행정기관·지자체·공기업 600여곳에 에너지 절약 협조 공문
이번 조치는 '에너지이용합리화법' 제7조에 근거한 것으로, 해당 조항은 국내외 에너지 시장 변화로 수급에 차질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정부가 에너지 수급 안정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원유와 천연가스 수급 상황을 고려해 자원안보 위기 경보를 '관심' 단계로 발령한 상태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이 먼저 에너지 절약에 나서도록 해 수요 관리 체계를 가동하겠다는 취지다.
공문에는 공공기관이 우선적으로 시행해야 할 구체적인 절약 조치들이 담겼다. 가장 핵심은 건물 냉·난방 관리다. 공공기관은 난방 설비를 가동할 경우 평균 실내온도를 18도 이하, 냉방 설비를 사용할 경우 28도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근무시간 동안 개인 난방기 사용도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건물 설비 운영도 절약 중심으로 조정된다. 홍보 전광판 등 옥외 광고물은 밤 11시부터 다음 날 일출 전까지 소등하도록 했으며, 엘리베이터 역시 기관 특성에 맞춰 격층 운행이나 시간대별 제한 운행 등을 실시하도록 했다.
사무실 내 전력 사용 관리도 강화된다. 사무기기나 가전제품을 새로 구매하거나 교체할 때는 에너지 절약 마크가 부착된 제품을 사용하도록 하고,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는 자동으로 전력을 줄이는 절전 프로그램 도입도 권고됐다.
개인난방 금지·옥외 광고판 야간 소등 등 솔선수범 강조
교통 부문에서도 절약 조치가 시행된다. 공공기관 임직원을 대상으로 승용차 요일제를 운영해 특정 요일에는 차량 운행을 제한하도록 했다. 다만 친환경차나 장애인 차량, 임산부 동승 차량 등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정부는 공공기관이 에너지 절약을 솔선수범해야 민간과 국민의 참여도 확대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원안보 위기 상황에서 공공부문이 먼저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모습을 보여야 사회 전반의 절약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를 단순한 절약 권고라기보다 에너지 수급 불안 가능성에 대비한 '수요 관리 신호'로 보고 있다. 중동 지역 긴장이 장기화할 경우 국제유가 상승과 해상 운송 차질 등으로 에너지 공급망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향후 원유와 천연가스 수급 상황, 국제 에너지 가격 동향 등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면서 필요할 경우 추가적인 대응 조치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