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법원이 독일에서 태어난 4세 아동에게 생물학적 아버지와 그의 남성 배우자, 친모 등 3명의 법적 부모를 인정했다. 지방 당국은 해외 대리모 가능성을 이유로 입양 인정을 거부했지만, 법원은 "대리모 약정이 없었다"며 이를 뒤집었다.
12일 인디펜턴트를 비롯한 외신은 이탈리아 법원이 4세 아동에게 법적 부모 3명을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법원이 독일에서 태어난 4세 아동에게 생물학적 아버지와 그의 남성 배우자, 친모 등 3명의 법적 부모를 인정했다. 픽사베이
생물학적 아버지와 그의 남성 배우자, 친모까지 모두 부모 지위를 인정한 사례로 보수적인 이탈리아 가족법에서 매우 이례적인 결정으로 평가된다. 앞서 이탈리아 남부 바리 항소법원은 지난 1월 독일에서 태어난 4세 아동의 입양 효력을 이탈리아에서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최종 확정됐으며, 최근 이탈리아에서 동성 커플의 법적 결합을 인정한 시민결합법 통과 10주년을 맞아 공개됐다.
아동은 독일에서 결혼한 남성 2명과 함께 생활해 왔다. 이들 중 한 명은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로, 부부의 친구인 여성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얻었다. 이후 생물학적 아버지의 배우자인 이탈리아계 독일인 남성이 독일법에 따라 아이를 입양했다. 그러나 이 남성이 이탈리아에서도 입양을 인정해 달라고 신청하자, 현지 지방 당국은 이를 거부했다. 당국은 아이가 해외 대리모를 통해 태어난 사례일 가능성을 의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리 항소법원은 이 같은 판단을 뒤집었다. 법원은 이 가정에 대리모 약정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독일에서 성립한 입양 관계를 이탈리아에서도 인정해야 한다고 봤다. 이에 따라 이 아동은 이탈리아에서도 생물학적 아버지, 그 배우자, 친모 등 모두 3명의 법적 부모를 갖게 됐다. 이들을 대리한 변호사 파스콰 만프레디는 로이터에 "비밀 대리모 계약은 없었다"며 "세 사람 모두 이 아이의 부모가 되기를 원했고, 법원이 이를 인정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는 2016년 시민결합법을 통해 동성 커플의 법적 결합을 인정했지만, 동성혼은 여전히 허용하지 않고 있다. 또 입양과 출생등록, 대리모 문제를 둘러싼 규제와 법원 판단이 엇갈리면서 성 소수자 가족의 법적 지위는 계속 정치·사회적 논쟁의 중심에 놓여 있다. 픽사베이
이번 판결은 이탈리아가 대리모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는 가운데 나왔다. 이탈리아는 2004년부터 국내 대리모를 금지해 왔으며, 2024년에는 이탈리아 국민이 해외에서 대리모를 이용하는 행위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확대했다. 위반 시 최대 징역 2년과 100만 유로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이번 사건의 쟁점도 대리모 여부에 집중됐다. 지방 당국은 해외 대리모 가능성을 이유로 입양 인정에 제동을 걸었지만, 법원은 실제 대리모 약정이 없었다는 점을 받아들였다. 판결의 핵심이 '동성 커플의 일반적 부모 지위 인정'이라기보다, 이미 독일에서 형성된 가족관계와 아동의 법적 안정성을 이탈리아에서도 인정할 수 있는지에 있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판결을 둘러싼 논란은 커지고 있다. 가톨릭계 보수단체 '프로 비타 & 파밀리아'는 동성 결합의 법적 인정이 "가족법을 뒤엎고 미성년자를 사회적·이념적 실험에 노출했다"며 반발했다. 반면 성 소수자 권리 단체와 진보 진영에서는 이번 판결이 다양한 가족 형태 속에서 아동의 권리와 법적 안정성을 우선한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탈리아에서는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여성 동성 커플의 경우 비 생물학적 어머니도 출생 증명서상 부모로 등록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등, 동성 부모의 법적 지위를 둘러싼 사법 판단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이탈리아는 2016년 시민결합법을 통해 동성 커플의 법적 결합을 인정했지만, 동성혼은 여전히 허용하지 않고 있다. 또 입양과 출생등록, 대리모 문제를 둘러싼 규제와 법원 판단이 엇갈리면서 성 소수자 가족의 법적 지위는 계속 정치·사회적 논쟁의 중심에 놓여 있다. 이번 바리 항소법원 판결은 한 아동의 가족관계를 둘러싼 개별 사건이지만, 이탈리아 사회에서 '부모'의 법적 의미와 비전통적 가족 형태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의를 다시 촉발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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