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나 다른 국가들이 희토류 제련·가공을 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지난 40여년간 축적된 중국의 기술력을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권이균 한국지질자원연구원(KIGAM) 원장은 12일 열린 '2026 KIGAM 미디어데이'에서 글로벌 희토류 공급망 현실을 이렇게 진단했다.
서태평양 공해상 희토류 탐사 과정에서 지난 9일 채취한 퇴적물 시료를 분석·전처리하고 있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KIGAM) 연구진의 모습. 연구진은 시료에서 희토류 함유 여부와 농도를 확인하기 위한 분리·분석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김종화 기자
희토류는 전기차 모터와 반도체, 방산, 풍력발전, 디스플레이 등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핵심 광물이다. 하지만 채굴부터 정제·분리·가공까지 대부분의 공급망이 중국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최근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희토류는 경제 문제를 넘어 국가 안보 자산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경우 KIGAM 자원활용연구본부장은 "희토류 공급망은 신이 만든 자원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기술의 질서"라며 "희토류 자원은 세계 곳곳에 존재하지만, 실제 산업에 필요한 원료로 만드는 길은 중국 중심의 가공 기술로 이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공급망 질서에 참여하고 우리만의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체 기술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권 원장은 "과거에는 낮은 인건비와 환경 문제 때문에 미국에서 중국으로 희토류 가공 산업이 이동했지만, 지금은 '기술을 만들 수 있느냐'의 문제가 됐다"며 "중국 수준의 희토류 가공 기술을 산업 규모로 구현할 수 있는 국가는 사실상 중국뿐"이라고 강조했다.
KIGAM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희토류 분리·정제 기술 국산화와 함께 '희토류 가공 K-플랜트' 핵심 장비 개발에 본격 착수했다. 특히 네오디뮴(Nd)·디스프로슘(Dy) 등 고성능 자석용 희토류 회수 기술과 중희토류 분리 기술 확보를 핵심 목표로 삼고 있다.
연구원은 단순 채굴 경쟁을 넘어 재활용 기반 '순환형 희토류 생태계'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기존 황산·염산 기반 공정 대신 젖산·요소 등 천연 유기물 기반 친환경 용매를 활용한 차세대 제련 기술 개발도 병행 중이다.
권 원장은 "희토류 공급망은 자원이 아니라 기술이 만드는 질서"라며 "한국이 주도하는 공급망 체계를 만들기 위해 탐사부터 가공·재활용까지 전주기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KIGAM은 희토류 공급망뿐 아니라 우주 자원 탐사 분야에서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달 자원 탐사와 현지자원활용(ISRU) 연구를 위해 개발 중인 로버 시제품을 한국지질자원연구원(KIGAM) 연구진이 시험 구동하고 있다. 연구원은 달 환경에서의 자원 탐사·시료 채취 기술 확보를 추진 중이며, 향후 국내 달 탐사 프로젝트 활용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김종화 기자
우주행성지질연구실은 한국형 달 궤도선 '다누리'에 탑재된 감마선 분광기 데이터를 활용해 달 표면 6종 원소 분포지도 제작을 완료하고, 이를 바탕으로 달 표면 광물·자원 분포 분석과 자원 유망지 평가 연구도 진행 중이다.
특히 칼륨(K), 철(Fe), 규소(Si) 등 달 주요 원소 지도와 광물 지도를 구축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2032년 한국형 달 착륙선 후보지를 추천하기도 했다.
임재수 KIGAM 우주행성지질연구실 실장은 "달 탐사는 단순히 착륙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내려야 하고, 어떤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지를 읽어내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며 "다누리 데이터는 향후 달 자원 탐사와 현지자원활용(ISRU) 기술 개발의 핵심 기반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원은 현재 달 환경 모사 진공챔버와 자원 채취용 로버 등 현지 자원 활용 장비 개발도 함께 진행 중이다.
기후위기 시대 지질재해 대응을 위한 AI 기반 플랫폼 개발도 속도를 내고 있다.
최이레 KIGAM 활성지구조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이날 우주·지상·지하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는 AI 기반 지질재해 대응 플랫폼 '가디언(GUARDIAN)'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가디언은 위성·지진·지하수·기상·지반 데이터 등을 통합해 지진, 해안침식, 싱크홀, 산사태 등 복합 지질재해를 조기에 탐지하고 위험도를 판단하는 시스템이다. 기존 '사후 대응' 중심 재난 체계를 넘어 "왜 발생했는가, 얼마나 위험한가,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까지 판단하는 AI 기반 의사결정 플랫폼을 목표로 하고 있다.
권이균 한국지질자원연구원(KIGAM) 원장이 12일 연구원의 주요 업무에 대해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김종화 기자
특히 KIGAM은 가디언 프로젝트가 현재 기술성숙도(TRL) 7단계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이는 실제 현장 환경에서 시스템 성능 검증이 가능한 단계로, 연구실 수준을 넘어 공공 재난 대응 체계와 연계한 실증·상용화를 추진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의미다.
최 연구원은 "지질재해는 더 이상 특정 지역의 단일 재난이 아니라 기후변화·도시 인프라·지하공간 문제와 결합된 복합 재난으로 바뀌고 있다"며 "가디언은 단순 모니터링이 아니라 과학적 판단과 대응 우선순위까지 제시하는 국가형 플랫폼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권 원장은 "과거 지질자원 연구가 '땅속 자원'을 찾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공급망·우주·재난까지 연결하는 국가 전략 기술로 확장될 것"이라며 "국민 안전과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지키는 연구기관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