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던 유기합성의 오랜 공정이 한 번의 반응으로 압축됐다.
분자 세계에도 '레고 조립' 시대가 열렸다. 약물과 첨단 소재의 핵심이 되는 복잡한 화합물을 4가지 이상의 성분으로 한 번에 조립할 수 있는 새로운 화학 합성법이 등장했다.
여러 단계에 걸쳐 진행되던 합성 과정을 단일 반응으로 구현함으로써, 고부가가치 분자의 제작 속도와 효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UNIST 화학과 홍성유, 로드 얀우브(Jan-Uwe Rohde) 교수팀은 DGIST 서상원, 정병혁 교수팀과 함께 니켈 촉매를 이용해 4개의 서로 다른 화합물을 단 한 번의 반응으로 결합시키는 합성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연구진, (좌측부터) 홍성유 UNIST 교수, 서상원 DGIST 교수, 정병혁 DGIST 교수, 전지환 UNIST 박사, 김다혜 UNIST 연구원. UNIST 제공
기존의 화학 합성에서는 2개 혹은 3개의 물질을 결합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4개 이상의 물질을 한 번에 원하는 위치에 정확히 결합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반응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아 엉뚱한 부산물이 만들어지거나, 화합물들이 무한히 결합하는 고분자 중합 반응으로 이어지기 쉬웠다.
연구팀이 개발한 합성법은 라디칼이 친전자성과 친핵성을 번갈아 가며 띠도록 설계돼, 화합물 분자가 정해진 위치와 순서에 따라 이어질 수 있다. 라디칼은 다른 분자와 결합하려는 반응성이 높은 특수한 물질이다. 라디칼의 성질이 바뀔 때마다 다음 결합 대상이 결정되면서, 마치 육상 경기에서 바통을 넘기듯 앞선 반응으로 생성된 라디칼이 다음 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복잡한 분자를 조립해 낸다.
니켈 촉매는 초기 라디칼을 만들고, 반응 마지막 단계에서 라디칼을 선택적으로 포획해 결합을 마무리함으로써 반응이 더 이어지거나 엉뚱한 부산물이 생기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 합성법으로는 알킬 할로겐화물, 알켄, 1,3-엔아인, 아릴 할로겐화물이 순차적으로 반응해 결합하게 된다. 알켄의 농도를 높였을 때는 알켄이 두 번 반응에 참여해 다섯 개 화합물 분자가 결합하는 반응으로 확장할 수도 있다.
이번 연구에는 전지환, 김다혜 연구원이 제1저자로 참여했다. 연구팀은 "화학 합성은 그동안 의약품 등에 쓰이는 정밀 저분자 합성과 플라스틱 합성과 같은 고분자 합성으로 나뉘어 발전해 왔다"며 "이번 연구는 이 두 영역 사이에서 여러 성분을 한 번에 순서대로 연결할 수 있는 새로운 합성 방식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학술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홍성유 교수는 "신약 개발에 필요한 복잡한 유기 분자 설계나 새로운 기능을 갖는 신소재 합성에 중요한 기반 기술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그림. 4성분 결합 반응 개념도.
이번 연구 결과는 자연과학 분야 세계적 권위의 국제학술지인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에 4월 9일 출판됐다. 연구 수행은 한국연구재단의 집단연구 ERC과제 (미세플라스틱 대응 화공·바이오 융합 공정 연구센터)와 개인기초연구사업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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