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추신경계(CNS) 질환 치료제는 가공할 속도전으로 글로벌 ADC(항체약물접합체) 라이선싱 거래의 약 90%를 차지하는 중국조차 넘지 못 한 벽이다. ADC와는 차원이 다른 CNS 치료제의 난도 때문이다.
알츠하이머·우울증·조현병 같은 CNS 질환은 발병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뇌의 어느 부위를 건드려야 치료할 수 있는지에 관해 학술적으로 합의된 이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표적이 불분명하고, 치료제를 만들어도 뇌에 도달시키기가 어려우며 사람에게 효과를 낼 수 있는지를 측정할 지표마저 부족하다. 답안 자체가 없는 영역이란 뜻이다.
구체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혈액뇌장벽(BBB)이다. BBB 자체가 약물 진입을 차단할 뿐 아니라 뚫고 들어간 약물조차 뇌 내부 단백질에 붙잡혀 표적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CNS 질환은 여러 원인이 얽히고 설킨 결과로 발생하기 때문에 하나의 표적만 조절하는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동물 실험의 한계도 해결돼야 한다. 쥐의 뇌에서 효과를 본 후보물질이 인간 뇌에서 재현되지 않는 사례도 그간 계속해서 누적돼왔다.
CNS 질환 치료제를 둘러싼 이 같은 난관은 역설적으로 해당 분야에서의 기회가 우리나라에도 열려 있다는 의미다. 근래 잇따른 빅딜의 주인공이 됐던 ADC의 경우 검증된 공식을 따라가는, 이미 답안이 나온 시험이라서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기득권을 획기적으로 뛰어넘기 어려운 반면 CNS 질환 치료제는 아직 깃발이 꽂히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수천억원대 글로벌 매출 신약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의 한 제약사 임원은 최근 기자와 만나 "중국 ADC를 사려고 다국적 제약사가 줄을 선 상황에서 한국 회사가 뒷줄에 따라붙어봤자 기회는 오지 않는다"면서 CNS 질환 치료제를 포함해 기회가 남아있는 영역에 더 적극적으로 도전해야 우리 제약·바이오 산업의 '퀀텀 점프'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선관 SK바이오팜 부사장은 최근 한 행사에서 한국은 정보기술(IT)에 강점이 있고 적합한 환자군을 정밀하게 선별하는 역량을 갖췄다는 점을 들며 기초연구와 임상이 결합한 한국형 CNS 치료제 모델이 글로벌 무대에서 차별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주 리가켐바이오 대표 또한 차기 파이프라인으로 CNS 질환 치료제에 주력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발굴 속도 경쟁보다 기초과학의 축적과 임상 설계 역량이 중요한 분야인 만큼 한국 바이오텍에도 기회가 있다는 판단이다.
글로벌 바이오 인수합병(M&A) 분석업체 비전 라이프사이언시스에 따르면 지난해 CNS·신경과학 분야 거래 규모는 307억달러(약 45조7030억원)로 종양학 분야를 추월했다. 신경과학이 빅파마 자본 배분에서 항암을 앞지른 것은 처음이다. 존슨앤드존슨이 정신질환 치료제 카플리타의 개발사 인트라셀룰러테라피스를 146억달러(21조7350억원)에 인수하고, 노바티스가 신경근육질환 신약 개발사 어비디티바이오사이언스를 120억달러(17조8644억원)에 사들이는 등 빅딜이 신경과학에 몰렸다.
알츠하이머·파킨슨병·정신질환처럼 환자 수가 많고 치료 옵션이 부족한 영역에 임상 후기 자산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실패율이 높다'며 빅파마가 외면해온 신경과학이 자본의 1순위로 부상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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