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안양이면 6만원에 가줄게."
지난 7일 새벽 서울역 버스환승센터 앞. KTX 막차 운행 종료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기 무섭게 캐리어를 끈 외국인과 시민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기자의 손목을 60대 남성이 덥석 낚아챘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택시 영업용 번호판인 '바·사·아·자'가 아닌 일반 승용차 4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택시 면허가 없는 '불법 택시'인 것이다.
'앱으로 택시를 불러보겠다'고 하자 남성은 "지금 시간에 택시가 잡힐 것 같아? 이런 차 처음 봐서 겁나면 번호판 찍어서 엄마한테 보내든가"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10년 경력을 자처하는 그의 차량 내엔 미터기도, 카드 결제기도 없었다. 오직 현금과 이체만 통하는 무법지대였다.
지난 7일 새벽 서울역 버스환승센터 인근에서 불법 유상운송 차량 운전자로 추정되는 남성이 시민들을 상대로 호객 행위를 하고 있다. 최근 서울 심야시간대 택시 부족 현상이 이어지면서 이른바 불법 택시 영업이 서울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박호수 기자
심야 교통난이 이어지면서 도심 곳곳에서 불법 유상운송 차량들이 활개치고 있다. 역 주변이나 인파가 몰리는 곳마다 외국인 관광객과 시민들을 상대로 한 막무가내 영업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택시 공급 부족과 심야버스 혼잡까지 겹치며 문제가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서울시 택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서울에 등록된 택시는 6만4933대로 2019년 기준 7만1806대보다 6800여대 줄었다. 이 기간 택시 운전자 수도 3만527명에서 2만501명으로 1만명 가까이 감소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시기 배달·택배 업종 등으로 이탈한 기사들이 돌아오지 않으면서 서울의 심야 교통난도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택시 승강장에는 수십명이 긴 줄을 늘어뜨렸지만, 택시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지하철 막차까지 끊기자 수요는 더 늘어났고 그 빈틈을 불법 차량들이 파고들었다. 호객꾼들은 외국인들에게 다가가 서툰 영어로 "3만원 오케이?" 등 흥정하는 말을 연신 외쳐댔다. 영국인 관광객 해나 데이비스씨(47)는 "취객과 노숙인이 뒤섞인 거리에서 누군가 붙잡고 타라고 하니 두렵다"며 "한국의 치안이 좋다는 말만 믿고 왔는데 당혹스럽다"고 눈살을 찌푸렸다.
새벽 1시를 넘기자 택시 대기 줄은 더 길어졌다. 결국 한 중국인 관광객은 "신림까지 5만원"이라는 말에 검은색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당시 카카오T 앱 기준 서울역에서 안양역까지 예상 택시요금은 약 3만7000원, 신림역까지는 약 1만8000원 수준이었다. 불법 유상운송과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억지 호객도 모자라 정상 요금보다 많게는 갑절이 넘는 가격을 부른 셈이다.
지난 7일 새벽 지하철 막차가 끊기자 서울역 택시 승강장 인근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택시를 잡기 위해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다. 박호수 기자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상 허가 없이 자가용으로 승객을 태우고 돈을 받으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서울시와 자치구는 불법 유상운송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방식으로 불법 택시에 대응하고 있지만, 직접 단속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용산구 관계자는 "사진·영상이 포함된 민원이 들어오면 관할 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하고 있지만, 현장 단속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 서울역파출소 관계자도 "주변 신고가 없고 단속할 인원도 한정돼 있어 직접 단속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신고와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심야 시간대 택시 공급 부족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불법 유상운송이 음성 시장처럼 아직도 자리 잡고 있다"며 "외국인 관광객 증가와 심야 이동 수요 확대에 맞춰 심야버스 증편, 공공형 심야 이동수단 도입 등 공급 자체를 늘리는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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