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46주년]"그날 비상계엄을 막아낸 원동력은 '광주 오월 정신'이었다"

①국회 계엄군 저지 나선 박태진 부장
보좌진과 함께 소화기 분말 뿌리며 사투 끝 '본회의' 개최 일조
"어린시절 부모님께 피흘려지킨 민주주의 소중함 배워" 명심
"'불의에 맞선 5월 저항 정신'은 한국 민주주의 핵심 동력"자부심

편집자주1980년 5월 광주는 계엄군의 군홧발에 외롭게 짓밟혔으나, 2024년 12월 3일의 대한민국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반헌법적 비상계엄 선포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무장한 계엄군의 총칼 앞을 가로막은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닌, '5·18의 기억'을 가슴에 품은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부모 세대가 피로 일궈낸 민주주의를 자녀 세대에게는 온전히 물려주겠다는 그 사명감이 국회의 문을 닫아걸었고, 끝내 계엄군을 되돌려 세우는 실효적 동력이 됐다. 하지만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골자로 한 이번 개헌안은 국민의힘의 대거 불참에 따른 '투표 불성립'으로 인해 39년 만에 허망하게 무산됐다. 현장에서 몸을 던져 계엄을 막아냈던 민초들의 희생을 정치가 정면으로 배신한 셈이다. 본보는 3회에 걸친 기획 시리즈를 통해 12·3 새벽 사투의 주역들과 탄핵 국면에서 활동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내 안의 5·18'을 기록한다.

평온한 저녁 들이닥친 '날벼락'… 아수라장 된 민의의 전당"

계엄군의 총과 칼은 분명히 무서웠다.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고, 그게 나였을 뿐이다."


지난 3일 대한민국 헌정사상 17번째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그 날,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정문 앞은 문자 그대로 '전쟁터'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붉은 소화기 분말을 뿌리며 무장한 계엄군과 대치했던 인물, 박태진 조국혁신당 당대표 비서실 부장은 12일 긴박했던 계엄 당시의 상황을 담담히 술회했다.

박 부장이 계엄 선포 소식을 접한 것은 3일 오후 10시께였다. 당 내부 회의를 마치고 늦은 저녁 식사를 위해 이동하던 중 들려온 날벼락 같은 소식에 그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꿈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쉬지 않고 울려 대는 휴대전화 알림이 현실임을 깨닫게 했다. 그는 곧장 국회로 향했다.


오후 11시, 국회 정문은 이미 경찰에 의해 봉쇄된 상태였다. 박 부장과 동료 보좌진들은 "출입 금지 명령의 명확한 법적 근거를 대라"며 항의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결국 이들은 몸싸움을 벌인 끝에 자정이 다 돼서야 본청 진입에 성공했다.

박태진 조국혁신당 당대표 비서실 부장이 지난 2024년 12월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내에서 계엄 당시 현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현기 기자

박태진 조국혁신당 당대표 비서실 부장이 지난 2024년 12월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내에서 계엄 당시 현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현기 기자

쇠지렛대 맞선 소화기 한 통… 필사의 '지연전' 펼친 보좌진들

그러나 본청 내부는 더 큰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헬기를 타고 국회 운동장에 착륙한 무장 군인들이 속속 본청으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었고, 우원식 국회의장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에 돌입했지만 의결 정족수인 151명을 채우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박 부장을 포함한 야당 보좌진들은 본회의장 사수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주변에 있던 책상과 의자 등 모든 가구를 끌어모아 정문에 바리케이드를 쳤다. 하지만 수적 열세는 뚜렷했다. 정문 진입이 막히자 계엄군은 유리창을 깨고 우회 진입을 시도했다.

박 부장은 "본회의장으로 향하는 마지막 나무 문 앞까지 밀려났을 때, 등 뒤에 느껴지던 나무 문과 동료들의 숨소리가 기억난다"고 말했다. 계엄군이 쇠지렛대로 문을 부수기 시작했고, 파손된 틈 사이로 날카로운 쇳덩이가 흉기처럼 들이닥쳤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박 부장은 주변에 있던 소화기를 집어 들고 뿜어냈다. 뿌연 분말이 계엄군의 시야를 가리는 사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소중한 '초' 단위의 시간이 벌어졌다.

오월 광주의 DNA가 깨웠다… "자식에겐 민주주의 물려줘야"

그가 이토록 처절하게 저항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뿌리 깊은 '5·18 정신'에 있었다. 광주 출신인 박 부장은 1980년 5월의 참상을 몸소 겪은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국민이 피를 흘렸는지 듣고 자랐다"며 "이번 사태를 겪으며 내 자식들에게만큼은 부끄럽지 않은 민주주의를 물려줘야 한다는 사명감이 발동했다"고 강조했다.


결국 박 부장과 보좌진들의 사투로 벌어낸 시간은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집결하는 결정적 토대가 됐고, 오전 1시 1분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은 재석 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박 부장의 행동이 80년 5월 광주가 보여준 '불의에 맞서는 저항 정신'의 2026년판 재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계엄이라는 국가 폭력 앞에서 시민의 대변인들이 몸을 던져 헌정 질서를 수호한 것은 5·18 정신이 과거의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민주주의의 핵심 동력임을 증명했다는 분석이다.

계엄은 막았지만, 개헌은 무산… '미완의 과제' 된 오월 정신

최근 국회를 중심으로 논의 중인 '5·18 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움직임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 8일, 국회 본회의 헌법 개정안 표결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거 불참하며 39년 만의 개헌 시도는 무산됐다. 현장에서 몸으로 계엄군을 막아냈던 이들의 목소리가 정치권의 계산기 앞에서 지워진 셈이다.


박 부장은 "단 몇 초만이라도 군을 지연시킬 수 있다면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버텼다"며 "그 희망의 근간이 바로 5·18 정신이었고, 그 정신이 이번 계엄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낸 것"이라고 전했다.





호남취재본부 민현기 기자 hyunk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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