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과 약물의 결합 상태를 원자 수준에서 정밀 판별할 수 있는 초정밀 센서 기술이 개발됐다. 약물이 인체에서 원하는 방향대로 작용(치료 효과)하려면 특정 표적 단백질과 정확하게 결합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구조가 비슷한 저분자 약물은 단백질과 결합했을 때 차이가 미세해 결합 상태를 정밀 분석하는 것이 쉽지 않다. 개발된 기술은 수많은 신약 후보 물질 중 치료 효과가 큰 물질을 신속·정확하게 선별하는 과정을 도와 신약 개발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공동연구팀 구성원들이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은 인공지능(AI) 바이오 의약연구소 지승욱 박사와 정기백·황성보·김진식 박사 공동연구팀이 단백질과 약물 간 결합 상태를 분자 단위로 식별·분석하는 '초정밀 나노포어(nanopore) 센서' 기술을 개발했다고 12일 밝혔다.
나노포어는 수 나노미터(㎚·10억분의 1m) 크기의 틈새로, 단백질이 통과하거나 머무를 때 전기 신호가 미세하게 변화하는 특징을 가졌다.
공동연구팀은 나노포어에서 생기는 전기신호를 정밀 분석해 단백질과 약물의 결합 상태를 판별할 수 있는 점에 주목해 초정밀 나노포어 센서 기술을 개발, 항암제 개발의 핵심 표적인 'BRD4(Bromodomain-containing protein 4)'를 대상으로 실험했다. BRD4는 암 등 다양한 질병이 발생하는 데 관여하면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중요 단백질로 알려졌다.
실험은 나노포어 기술로 BRD4에 결합하는 다수 약물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때 약물 종류에 따라 전기 신호 패턴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확인했다.
특히 공동연구팀은 실험에서 질량 차이가 2.5Da(달톤)에 불과한 매우 유사한 약물까지 완벽하게 구별했다. 기존 나노포어 기반의 단백질 분석 기술이 88~116Da(달톤) 수준의 차이를 구별하는 데 머물렀던 것을 고려하면, 수십 배 정밀해진 초고해상도 분석이 가능해진 셈이다.
초정밀 나노포어 센서를 이용하면, 구조적 차이가 매우 미세한 약물 결합도 식별할 수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단백질 구조가 큰 폭으로 변화했을 때만 차이를 식별할 수 있던 기존의 한계를 해소했다는 점에서다.
공동연구팀은 표적 단백질이 초정밀 나노포어 센서 내부에서 보이는 위치 변화와 움직임 그리고 전류 신호 패턴 등 다양한 특성을 동시에 분석하는 다중 파라미터 분석 기법도 개발했다.
이를 통해 단백질-약물 결합을 약물별로 구별할 고유의 전기적 지문을 확보, 별도의 형광 표지 없이 극소량의 시료로도 단일 분자 수준에서 빠르게 분석이 가능한 기반을 제시했다.
공동연구팀은 개발한 기술이 향후 현장에서 활용되면 수만 개의 신약 후보물질 중 최적의 물질을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선별하는 것이 가능해져 신약 개발의 기간 단축과 효율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지승욱 박사는 "공동연구팀이 개발한 초정밀 나노포어 센서 기술은 단백질과 약물의 결합 상태를 세계 최고 수준의 고해상도로 판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며 "이 기술은 향후 고효율 신약 발굴을 가속화하는 동시에 정밀 의료와 질병 진단 분야로 확장 가능한 플랫폼 기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생명연 주요 사업과 과기정통부 개인기초연구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연구 결과는 최근 글로벌 과학저널 'ACS Nano'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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