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휴전에 대해 '연명 치료'라고 비유하며 '프로젝트 프리덤'(Project Freedom·해방 프로젝트) 재개까지 시사하자 이란이 "모든 옵션에 대비돼 있다"고 맞받아쳤다. 중동 긴장이 다시 고조되며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치솟는 휘발유 가격 부담을 낮추기 위해 연방 유류세 한시 면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란 측은 11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발언에 즉각 맞대응했다. 종전 협상에서 이란 대표단을 이끌었던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옛 트위터)에 "우리 군은 어떠한 침략에도 단호하게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며 "우리는 모든 옵션에 대한 준비를 마쳤고, 그들은 (우리의 대응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잘못된 전략과 결정은 언제나 잘못된 결과로 이어진다"며 미국을 겨냥한 비판도 내놨다.
갈리바프 국회의장은 이후 다른 게시물을 통해 "14개 조항의 새 제안서에 명시된 이란의 권리를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며 "다른 어떤 접근도 완전히 결론 없이 끝날 것이고, 실패만 거듭하게 될 것이다"고 지적했다.
새 제안서에는 미국의 전쟁 배상금 지급,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주권 인정, 미국의 제재 해제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는(NYT) 이란 전문가들을 인용해 이란의 이러한 접근 방식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에도 살아남아 용기를 얻은 지도부의 모습을 반영한다고 전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미국·이란 휴전 상황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약하고 가장 약한 상태"라며 "대대적인 생명유지장치(life support)에 의존하고 있고, 의사가 들어와 약 1%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란의 새 제안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없고 멍청한(stupid) 제안"이라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오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중단된 대이란 군사작전인 해방 프로젝트 재개 가능성도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에 갇힌 선박을 구출하기 위해 지난 4일부터 해방 프로젝트를 개시한 바 있다. 그러나 하루 만인 이튿날 이란과의 종전 협상에 진전이 있다며 해방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휴전 붕괴 우려는 즉각 국제유가를 자극했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6월 인도분 미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장 대비 2.8% 상승한 98.97달러에 마쳤다. ICE선물거래소에서 7월 인도분 브렌트유는 전장 대비 2.9% 오른 배럴당 104.21달러를 마무리했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기대감이 빠르게 사그라지면서 에너지 공급 위기가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 최근 모건스탠리도 보고서에서 국제 원유시장이 현재 "시간과의 싸움(a race against time)"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6월 말이나 7월까지 이어질 경우 브렌트유 현물가격은 급격한 가격 조정을 겪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미 실생활에서 유가 상승 부담이 현실화하고 있다. 미국 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11일 기준 미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당 4.520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이란전쟁 당일인 2월28일 평균 가격(2.980달러)보다 51.6% 급등한 가격이다. 지난해 평균(3.135달러)보다도 44.1% 높다.
에너지부 자료를 보면 미국 휘발유 재고량은 계절별로 10년 만에 최저 수준에 근접해 있다. 특히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가장 빠르게 상승한 중서부 지역은 계절 기준 휘발유 재고가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 휘발유세(갤런당 18.4센트)를 한시적으로 중단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큰 폭은 아니지만, 여전히 돈"이라며 소비자 부담 완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휘발유에는 갤런당 18.4센트의 연방세가 부과된다. 휘발유세를 유예하려면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공화당 소속 조시 홀리 상원의원(미주리)은 즉각 관련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실효성을 둘러싼 회의론도 적지 않다. 초당정책센터(Bipartisan Policy Center)는 연방 유류세 면제 시 실제 가격 인하 효과가 갤런당 10~16센트 수준에 그칠 것으로 추산했다. 전쟁 이후 휘발유 가격 상승폭(1.54달러)에 비하면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가스버디(GasBuddy)의 석유 분석 책임자인 패트릭 드 한은 "돼지에 립스틱을 바르는 격"이라며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는 중동발 에너지 충격이 미국 물가를 다시 자극할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이번 주 발표될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휘발유와 항공 운임 상승 여파로 예상보다 상승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는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기대를 다시 후퇴시키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이날 매트 혼바크 모건스탠리 글로벌 매크로 전략 총괄은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이번 화요일 CPI는 좀 더 '매운(spicier)' 수치가 될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이번 주 발표되는 물가 지표들이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전망으로 어떻게 이어지느냐"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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