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그림 그리기'조차 사라진 교실

[초동시각]'그림 그리기'조차 사라진 교실

서울 시내의 한 초등학교 미술 시간. 아이들이 자유롭게 그림으로 표현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똑같은 도면을 받아 정해진 칸을 색칠하고 있었다. 한 아이는 "창작이 아니라 노동 같다"고 했다. 현장에서 만난 교사는 "그림을 못 그리는 아이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는 학부모 민원이 있었다"며 "이 때문에 같은 도면에 색칠하는 방식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학부모 민원이 교실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최근에는 학교 인근 주민들의 소음 민원 때문에 운동회를 축소하거나 아예 열지 않는 학교도 많다. 운동회를 열더라도 승패를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뒤처진 팀에 응원 점수를 몰아줘 마지막에는 무승부로 끝내는 식이다. 이런 방식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대부분 교사를 향한다. "학교에서 뭘 가르치는 거냐" "요즘 선생님들은 귀찮거나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는 비판 일색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한 번이라도 왜 교사들이 승패 없는 운동회를 열고, 현장체험학습을 꺼리며, 미술 시간마저 '안전한 방식'으로 바꾸려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은 있는지 묻고 싶다.


지난해 아시아경제가 전국 초등교사 309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5%는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다"고 답했다. 공교육 붕괴 원인으로는 79%가 '학부모와 사회의 과도한 요구'를 꼽았다. 기자가 "'교사는 ○○이다'라고 할 때 빈칸에 들어갈 말을 적어달라"고 하자 절반은 '보모'라고 했고, 이어 '감정 쓰레기통' '욕받이' '노예'라는 표현이 나왔다. 현장의 민원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아이 대신 일기를 써달라"는 요구부터 "모기 잡아달라"는 민원도 있었다.


교사들은 이번 현장체험학습 논란 역시 이런 구조의 연장선에서 바라본다. 현장체험학습은 2022년 강원 속초의 한 테마파크에서 현장체험학습 중 학생이 버스에 치여 숨진 사고 이후, 인솔교사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급격히 위축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고 비판했다. 그러나 교사들은 되묻는다. 정작 구더기를 치워주지도 않으면서 왜 장만 담그라고 하느냐고 말이다. 교육활동 중 발생한 사고가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자신을 보호해줄 시스템이 없다는 '불신', 여기에 과도한 '민원'까지 겹치면서 교사들은 점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에게 "왜 체험학습을 가지 않느냐"고 압박하는 것만이 답일 수는 없다. 교사들이 왜 체험학습을 두려워하게 됐는지부터 충분히 듣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최근 교육부 대응을 보면 정작 그런 준비가 돼 있는지 의문이 든다. 교육부는 지난 7일 현장체험학습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겠다며 공개 간담회를 열었지만, 정작 현장체험학습 축소에 우려를 제기해온 교원단체들은 토론 패널에서 빠졌다. 교육부는 "교원단체에도 참석을 요청했다"고 했지만, 교원단체 측 설명은 달랐다. "패널이 아니라 방청객 자격으로 참석 요청을 받았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교사 2명이 토론 패널로 참여했다"고 하지만, 일부 교원단체는 "교육부가 개별 섭외한 교사로 대표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한 교원단체 사무총장은 "충분히 학교 현장 얘기를 듣고 해법을 찾으려 한다기보다 대통령 발언 이후 일단 결과부터 만들어내려는 조급함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다른 교원단체 관계자 역시 "교사 면책을 일부 강화한다고 해도 지금 분위기에서는 여전히 체험학습을 가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기자 역시 학부모로서 아이들이 운동회도 하고 소풍도 가길 바란다. 하지만 그 출발점이 교사를 향한 비난이어서는 안 된다. 왜 교사들이 점점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 하는지 진정성 있게 들어봐야 한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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