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전세소멸, 거스를 것인가 대비할 것인가

전세 사라질 여건에서도 대출로 연명
전세대출 앞장선 정부, 연착륙 준비해야

[초동시각]전세소멸, 거스를 것인가 대비할 것인가

전세는 이대로 사라질까. 시대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소멸인가, 아니면 누군가 인위적으로 줄여나가고 있는 걸까.


일단 많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2000년 우리나라 전체 가구가 1430만가구였고 전세로 사는 가구는 28%로 400만가구 수준이었다. 최근 통계인 2024년 전체 가구 수는 2230만가구로 큰 폭으로 늘었는데 임차 비중이 38%, 또 그중 전세로 사는 비중이 40%가량을 차지한다고 하니 전세는 340만가구 정도가 된다. 근래 새로 맺는 주택 임대차 거래에서 월세 비중이 60~70%를 차지한다고 하니 올 들어 좀 더 줄었을 테다.

전세는 외국에는 거의 없는 우리 고유의 주거 문화로 조선시대에도 있었다고 한다. 20세기 후반 산업화 이후 나름의 역할을 했다. 자금이 달리는 사회 초년생에겐 '강제저축'이자 고정지출을 최소화할 수 있게 해 내 집 마련의 징검다리 기능을 했다.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금리가 꽤 높았기에 집주인은 보증금을 활용해 자산증식이 가능했다. 일반인은 대출을 받기 위한 문턱이 높았던 만큼 적어도 우리 사회 내 사금융의 핵심으로 꼽혔다.


2000년대 들어 고금리 시대가 저물면서 주택 임대차 시장이 과거와는 달라질 것이란 전망이 잇따랐다. 월세로의 전환, 전세 소멸 같은 논의가 주를 이뤘다. 과거 20%를 넘나들던 은행 금리는 2~4% 수준에 머문 지 한참 됐다. 집주인으로선 여유 주택을 전세로 공급할 유인책이 많이 사라진 셈이다. 여기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지면서 집값 상승에 관한 기대마저 꺾였다. 2010년 전후로 전세 공급이 유지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지만 전세가 줄어드는 속도는 예상보다 더뎠다. 수명을 다한 듯 보였던 전세 제도가 연명할 수 있던 중요한 배경 가운데 하나가 전세대출이다. 집주인으로선 운용수익률은 떨어졌지만 보증금 자체가 커지면서 전세를 유지할 명분이 됐다.


임차수요가 늘어난 상황에서 세입자가 손쉽게 자금을 조달해오자 집주인도 굳이 월세로 전환할 필요가 없었다. 전세수요가 늘고 대출이 쉬워지니 전셋값은 꾸준히 올랐다. 전세대출은 이렇다 할 담보 없이 공적 기관의 보증을 토대로 일으킨다는 점에서 인위적인 상품이다.

은행도 공적 보증서를 담보로 쉽게 영업할 수 있었고 정부도 재정을 쓰지 않으면서 서민주거를 챙긴다는 인상을 주기 좋았다. 이후 상황은 모두가 아는 대로다. 전세 보증금 인상은 집값을 밀어 올리는 자양분이 됐다. 깡통전세 등 보증금 반환 분쟁이 늘어나고 전세사기 같은 사회문제가 불거진 것도 이처럼 작위적으로 전세시장이 커진 탓이 크다.


전세대출이 문제가 있다는 점은 알지만 단단히 뿌리내린 탓에 함부로 건드리긴 어렵다. 사회 전반의 구조 차원에서는 전세대출로 인한 문제가 자명해 보이지만 당장의 거처 마련이 어려운 신혼부부나 청년층이 가장 원하는 건 원활하게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점(주거실태조사)이다.


전세 제도 자체가 서민 주거라는 인식이 강해 정부도 메스를 대는 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전세 보증금을 위한 공적 보증을 줄이겠다는 방침을 정한 후에도 시행을 주저하는 것도 시장의 충격이 만만치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출이라는 인공호흡기로 전세 시장을 유지해온 데 정부가 앞장섰던 만큼, 대출로 인한 부작용을 바로잡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전세 소멸을 피할 수 없다면 연착륙 방안을 고민하고 답을 내놔야 할 시점이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