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이 많으면 기업들만 힘들어집니다."
최근 공정거래 수사권을 두고 경제계 안팎에서 나오는 우려다. 그동안 담합, 계열사 부당 지원, 시장 지배력 남용 등 공정거래 사건은 공정위의 독점(전속고발권)과 검찰의 사후 견제(고발요청권)라는 팽팽한 긴장과 견제 속에서 굴러갔다. 공정위가 1차 관문 역할을 하며 무분별한 형사처벌을 걸러내면, 검찰이 형사 리니언시와 강제수사권을 통해 소극적인 공정위의 등을 떠밀어 수사의 날을 세우는 식이었다.
오는 10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출범을 앞두고 이 견고했던 균형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전속고발권 폐지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른 데다 검찰의 직접수사권 폐지 움직임과 맞물려 고발요청권과 형사 리니언시마저 공소청에 둘지 중수청에 둘지 정해지지 않았다. 고발 문턱은 낮아지는데 수사기관은 난립하게 돼 수사 체계가 급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은 "대체 누구에게 조사를 받고, 누가 기소하는 거냐"라고 토로하고 있다.
기업들 '4중 조사' 받는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속고발권은 담합 등 전문적인 경제 사건에 대해 공정위가 먼저 들여다본 뒤 고발해야만 형사 절차가 시작되도록 한 '방파제'였다. 잦은 고소·고발로 기업 활동이 마비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공정위가 기업을 봐준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자 검찰은 '고발요청권'이라는 칼을 쥐고 선제적 압수수색 등으로 수사의 주도권을 가져오며 견제해 왔다.
문제는 수사와 기소가 쪼개지는 공소청·중수청 체제가 도입될 경우다. 현재 중수청법은 공정거래 수사 범위에 포함돼 있다. 이 경우 얽히고설킨 실타래는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진다. 하나의 담합, 부당지원, 시장지배력 의혹을 두고 ▲공정위 조사 ▲중수청장 고발 ▲중수청, 국가수사본부, 경찰 등 수사기관 배당 ▲공소청(영장 및 기소 여부 판단)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다층 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속고발권마저 풀리면 지방정부나 시민단체의 고발까지 빗발칠 수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단체 등에 고발 권한이 주어지면 기업은 무분별한 고발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며 "고발이 무혐의로 끝나더라도 경찰서를 오가며 조사를 받는 것 자체가 기업에 엄청난 피로감과 불필요한 혼란을 안겨준다"고 지적했다.
대형 로펌의 A변호사는 "공정거래법은 대기업만 적용받는 게 아니라 도축업자 담합 사례처럼 개인사업자나 중소기업도 모두 대상이 된다"며 "공정위 조사는 임의조사라 일정 부분 기업 부담을 고려하지만 수사기관의 강제수사(압수수색)가 노하우 없이 무차별적으로 들어오면 작은 기업은 업무 자체가 마비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수사 전문성 갖췄나
더 큰 우려는 전문성 공백이다. 공정거래 사건은 "너네 둘이 만났지? 짰네" 하고 잡아넣을 수 있는 단순 범죄가 아니다. 시장의 구조, 거래 관행, 실제 경쟁 제한 효과 등을 입체적으로 따져야 한다.
공정위 출신의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애플리케이션(앱) 마켓 수수료 사례를 들며 공정거래 사건의 특수성을 설명했다. 그는 "똑같은 행위라도 시장 지위나 점유율에 따라 합법과 위법이 갈리는 게 공정거래 사건"이라며 "과거 구글이 애플을 따라 앱 마켓 수수료 30%를 떼어갔을 때 점유율이 미미했던 초기엔 문제가 안 됐지만 안드로이드 생태계가 커진 뒤엔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이 됐다. 고도의 경제 분석이 필요한 사안을 해본 적 없는 수사기관이 곧바로 판단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경영적 판단이 자칫 무리한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공정거래 수사 경험이 풍부한 서초동 변호사는 "일감 몰아주기나 부당지원의 경우, 보안성이나 효율성을 고려한 지극히 정상적인 경영 판단일 때가 많다"며 "그런데 다수의 수사기관이 경쟁적으로 강제수사를 벌이다 보면 무리하게 배임 혐의 등으로 엮어 별건 수사로 번질 위험이 크고 기업은 극도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리니언시도 혼란
담합 적발의 핵심 무기인 '리니언시(자진신고 감면제도)' 역시 절차가 꼬일 수 있다. 수사 주체가 여러 갈래로 찢어지면 "어디에, 언제 털어놓아야 보호받을 수 있는지" 셈법이 복잡해진다. 대형 로펌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는 "기업이 공정위와 검찰에 리니언시를 신청할 때 진술 과정에서 담합 기간이나 범위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며 "수사기관이 쪼개진 상태에서 이런 정보가 엇갈리면 1순위 면책을 받는 기업 순위가 뒤바뀌는 대혼란이 올 수 있다. 일원화를 하든 실시간 정보 공유 체계를 확실히 구축하든 통일된 처리가 시급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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