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양을 항해 중인 크루즈선에서 발생한 한타바이러스 감염과 관련해 세계보건기구(WHO)가 사람 간 전파 가능성을 제기했다. 승객들은 공중보건상 이유로 하선이 불허되면서 선박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의 세계보건기구(WHO) 본부. 로이터연합뉴스
NBC방송에 따르면, WHO 전염병 대응 책임자인 마리아 반 케르크호베는 5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매우 밀접한 접촉자들 사이에서 사람 간 전파가 있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최초 감염자는 승선 이전 이미 바이러스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선내에서는 감염의 주요 매개체로 알려진 쥐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타바이러스는 일반적으로 설치류의 배설물이나 타액 등을 통해 전파되는 감염병으로, 드물게 사람 간 전파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건조된 배설물이 공기 중 미세 입자로 퍼지고 이를 흡입하면서 감염되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문제의 선박은 현재 서아프리카 카보베르데 인근 해역에 있는 네덜란드 선적 크루즈선 'MV 혼디우스'다. 이 배에서는 확진 2건, 의심 사례 5건이 확인됐다. 이 가운데 3명이 사망했다. 사망자는 70대 네덜란드 부부와 독일 국적자 1명으로, 네덜란드 부부는 승선 전 남미를 여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염자들이 사망한 후에도 약 150명의 나머지 승객들은 여전히 하선하지 못한 상태다. 카보베르데 정부는 공중보건 우려를 이유로 입항을 불허하고 의료진을 선내에 투입해 대응하고 있다. 승객인 제이크 로즈마린은 NBC방송에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안전을 느끼는 것과 명확한 정보를 얻는 것,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당초 WHO는 해당 선박을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로 이동시켜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스페인 정부는 추가 감염이 없을 경우 기항 필요성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카나리아 제도 당국 역시 선박 수용에 부정적이며, 운영사가 있는 네덜란드로 귀환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입장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환자 3명을 이송할 준비에 착수했으며, 운영사도 특수 의료 항공기 2대를 카보베르데로 보냈다. 현지 당국도 수시간 내 환자 이송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감염 확진·의심자 7명 가운데 사망자 3명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치료 중인 영국인 환자를 제외한 4명이 여전히 선내에 머물고 있다. 네덜란드 여성 환자는 귀국 도중 기내에서 상태가 악화해 요하네스버그에서 사망했으며, 같은 항공편 탑승객 80여명도 추적 관리 대상에 포함됐다.
이 크루즈선은 영국·미국·스페인 승객을 태우고 지난 3월 말 출항했다. 남극 반도와 사우스조지아섬 등을 경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객실 요금은 최대 2만2000유로(약 3700만원) 수준이다.
다만 WHO는 한타바이러스에 대한 일반 대중 위험도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며 과도한 공포는 불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타바이러스는 한국의 고(故) 이호왕 박사가 처음 규명한 바이러스로, 잠복기는 수주에 이른다. 초기에는 독감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다가 악화할 경우 호흡기 질환과 장기 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별한 치료제나 완치법은 없지만 조기에 의료 조치를 받으면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