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선박 화재·美 작전 동참 압박…靑·정부 "보다 적극 검토" 기류 변화

사고 원인 규명·선원 안전 최우선 속 한미 공조 수위 고심
한반도 대비태세·국내법 절차·대이란 관계까지 복합 변수

호르무즈 해협 내 한국 선박 폭발·화재 사고를 계기로 미국의 군사작전 참여 압박이 거세지면서 청와대와 정부가 대응 전략을 두고 고심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우선 사고 원인 규명과 선박·선원 안전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두면서도, 미국이 제안한 이른바 '프로젝트 프리덤' 참여 문제를 이전보다 무겁게 검토하는 분위기다.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4.30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4.30 연합뉴스

6일 정부 고위관계자는 아시아경제에 프로젝트 프리덤 등 미국 측 제안에 대한 전날 청와대와 정부의 입장을 두고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는 "검토 중"이라는 신중한 표현을 유지하고 있지만, 한국 선박이 직접 피해를 입은 데다 미국 측 요구가 공개 압박으로 전환된 만큼 검토의 무게가 달라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전날 언론 공지를 통해 "정부는 국제 해상교통로의 안전과 항행의 자유가 모든 국가의 공동 이익에 부합하고 국제법상 보호돼야 할 원칙이라는 입장 아래 글로벌 해상 물류망의 조속한 안정, 회복, 정상화를 위해 여러 국제적 노력에 적극 참여해 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맥락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련 언급도 주목하고 있으며, 미측이 제안한 호르무즈 해협 관련 제안에 대해서도 상기 원칙, 한반도 대비태세, 국내법 절차 등을 감안해 검토 중"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또 "프리덤 프로젝트와 관련해서도 한미 간에는 호르무즈 해협을 포함한 주요 해상교통로의 안정적 이용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긴밀한 소통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표면적으로는 원칙론과 절차론을 함께 내세웠지만, '주목' '검토' '긴밀한 소통'이라는 표현을 통해 미국 측 제안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동시에 낸 셈이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해상 사고 대응을 넘어 외교·안보 현안으로 급격히 번지는 양상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 선박 피해를 계기로 한국도 호르무즈 해협 내 선박 구출·호위 성격의 미국 주도 작전에 동참해야 한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냈다. 미국이 한국 선박 피해를 동맹의 역할 확대 요구와 연결하면서, 청와대의 선택지도 한층 복잡해졌다.

정부는 일단 사고 원인 규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청와대에 따르면 강훈식 비서실장은 전날 오후 12시 30분부터 약 1시간 동안 청와대에서 호르무즈 해상 선박 화재 관련 상황 점검 및 대처 방안 회의를 주재했다. 회의에는 위기관리센터장, 해양수산비서관, 외교정책비서관, 국정상황실장 등이 참석했다.


정부는 사고 선박을 선사와 계약된 예인선을 통해 인근 항만으로 이동시킨 뒤 접안할 예정이며, 두바이 현지의 한국선급 지부 인력을 즉각 파견해 안전 검사를 시행하기로 했다. 또 선사 자체 조사와 별도로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소속 조사관과 소방청 전문가를 현지에 급파해 보다 객관적이고 신뢰성 있는 원인 규명에 나서기로 했다.


청와대가 원인 규명을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고가 단순 화재인지, 외부 충격에 따른 폭발인지, 특정 국가나 무장세력의 공격인지에 따라 정부 대응 수위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이란 책임론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성급히 군사작전 참여 쪽으로 기울 경우 중동 내 우리 국민과 기업, 선박 안전에 추가 부담이 생길 수 있다.


반대로 지나치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 한미동맹 차원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 에너지 수급과 해상 물류의 핵심 통로다. 중동 전쟁 장기화로 원유·나프타 수급, 물가, 산업 생산까지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해상교통로 안전 확보는 한국 경제와도 직결된다. 정부가 "항행의 자유"와 "글로벌 해상 물류망 안정"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17일 청와대에서 프랑스·영국이 주도하는 호르무즈 해협 자유항행에 관한 화상 정상회의를 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는 한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호주, 이라크, 싱가포르 등 50여 개국 정상·대표들이 호르무즈 해협 항행의 자유를 위한 국제적 노력, 선원 안전 및 선박 보호, 전쟁 종식 후 항행 안전보장을 위한 실질적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2026.4.17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7일 청와대에서 프랑스·영국이 주도하는 호르무즈 해협 자유항행에 관한 화상 정상회의를 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는 한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호주, 이라크, 싱가포르 등 50여 개국 정상·대표들이 호르무즈 해협 항행의 자유를 위한 국제적 노력, 선원 안전 및 선박 보호, 전쟁 종식 후 항행 안전보장을 위한 실질적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2026.4.17 연합뉴스

핵심 쟁점은 참여 방식이다. 정부 내부에서는 프로젝트 프리덤 참여가 곧바로 전투 작전 참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정보 공유, 선박 호송, 구조·구난 지원, 비전투 인력 파견, 해상 감시 협력 등 다양한 단계의 선택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어느 경우에도 군 인력·자산이 투입될 경우 국내법 절차와 국회 논의, 한반도 안보 공백 여부가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가 공식 입장에 '한반도 대비태세'를 명시한 것도 이 같은 셈법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중동 해역에 군사 자산을 추가 투입할 경우 북한 변수와 한반도 방위 태세에 미칠 영향을 따져야 한다는 의미다. 동시에 '국내법 절차'를 언급한 것은 파견 성격과 규모에 따라 국회 동의나 관련 법적 검토가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해석된다.


외교적 균형도 난제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 공조를 중시하면서도 이란을 포함한 중동 국가들과의 외교 채널을 유지해야 한다. 특히 중동 지역에는 우리 기업과 교민, 선박이 광범위하게 진출해 있어 군사적 긴장 고조가 곧바로 국민 안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청와대가 미국 측 언급에 주목한다고 하면서도 사고 원인 규명과 절차를 앞세운 것은, 확전 가능성을 관리하면서 동맹 요구에도 응답해야 하는 이중 부담이 적지 않다는 점을 방증한다.


여권 내부에서는 한국 선박 피해가 발생한 이상 정부가 기존보다 능동적인 대응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기류가 강해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그 방향이 곧바로 전투적 성격의 작전 참여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정부는 사고 원인 조사 결과, 미국 측의 구체적 요청 내용, 국제 공조 틀, 국내 여론과 국회 상황을 종합적으로 따져 단계적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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