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하려던 고속철 정비, 다시 독점으로? 정부 재검토에 속내 복잡해진 코레일·로템

에스알·로템, 2023년 1조원 규모 제작·정비 계약
정부, 고속철 통합 추진하며 해당 계약 재검토

고속철도차량 정비사업이 과거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독점 체제로 회귀할 조짐이다. 코레일은 SRT 운영사인 SR과 통합작업을 진행 중인데, SR이 과거 현대로템과 맺은 1조원 규모의 고속철 차량 정비계약을 양사 통합 후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유일 고속철 차량 제작업체인 현대로템은 반드시 정비시장에 진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과거 SR과 현대로템이 맺은 차량 정비 계약을 두고 재검토에 들어갔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코레일과 SR 통합 실무작업을 주도하는 국토교통부는 2023년 SR과 현대로템이 맺은 계약의 변경 여부 등을 검토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SRT 노선이 현재는 단순하지만 통합 이후에는 복잡해질 가능성이 있어 해당 계약을 포함해 정비 업무 전반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면서 "외부와 맺은 계약을 변경할 경우 법률 검토 등이 필요해 제반사항 전반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SR은 2023년 당시 현대로템과 1조원 규모의 고속철도차량 구매·정비 계약을 체결해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코레일은 그때까지 KTX는 물론이고 SRT 정비 업무까지 독점 수행해왔다. 하지만 1년 전인 2022년 정부가 "고속차량 제작사가 제작·정비 업무를 일괄적으로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방침을 내리자 SR은 14편성(112량)을 발주하면서 코레일 독점을 깨고 처음 외부 업체에 정비 업무를 맡겼다. 이후 코레일은 자체 정비를 유지했고 SR은 외주로 진행하는 체계가 됐다.

고속철도 운영기관 통합에 앞서 시범 중련운행을 준비중인 KTX와 SRT 차량. SR 제공

고속철도 운영기관 통합에 앞서 시범 중련운행을 준비중인 KTX와 SRT 차량. SR 제공


이 같은 구조는 코레일과 SR 통합이 진행되면서 다시 시험대에 놓이게 됐다. 코레일은 정비 업무를 이원화하는 데 따라 관리체계가 복잡해지고 오히려 긴급상황 시 대응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 민간에 별도 정비 인프라를 둬야하는 만큼 중복투자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자체 정비를 할 경우 비용 측면에서도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당시 맡은 위탁정비는 준비기간 2년을 포함해 총 17년 치, 금액으로는 5150억원 규모에 달했다. 계약대로라면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열차를 인도하고 이후 정비까지 맡게 되는데, 코레일이 정비를 맡게 되면 이 비용을 아낄 수 있다.


현대로템으로선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철도 부문에서 새 먹거리를 찾았으나 3년여 만에 다시 일감을 뺏길 처지에 놓였다. 회사 관계자는 "해당 계약과 관련해 아직 SR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이 없어 따로 검토하고 있는 건 없다"고 말했다.

개방하려던 고속철 정비, 다시 독점으로? 정부 재검토에 속내 복잡해진 코레일·로템

정부가 고심하는 부분은 안전과 효율성을 동시에 가져갈 수 있는지 여부다. 정부가 과거 열차 정비 업무를 외주로 맡기겠다는 구상을 내놨던 건 코레일 독점으로 정비 품질이 떨어지고 사고가 잦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기 때문이었다.

업계에선 기존 계약을 일괄적으로 해지하기보다는 일부 물량을 조정하는 선에서 조율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미 코레일이 화물열차 등 일부 차량의 정비 업무를 제작사에 맡기는 만큼, 고속철도 차량에 대해서만 독점적 지위를 유지해달라고 재차 주장하긴 명분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컨테이너나 시멘트를 실어 나르는 철도차량의 경우 전문제작사인 고려차량이 중정비 업무까지 맡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비 범위나 주기, 비용 등 고속철 차량의 정비 업무 전반이 베일에 싸여 있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정부로서도 외부 업체의 참여를 일방적으로 배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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