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대가는 왜 '중저신용자'에게 가장 가혹한가?…靑 정책실장의 두 번째 고백

금융구조 시리즈 2편…"나도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위기 몸통은 거대 자본, 후폭풍은 중저신용자에게"
"상위 등급엔 낮은 금리, 중간지대엔 고금리 절벽…도넛처럼 중간이 비어"
"핀테크도 회피 본성 못 바꿔…데이터가 더 우아한 거절 명분 돼"
"금융은 완전한 자유시장 아냐…국가 면허 아래 작동하는 제도적 산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금융위기의 책임과 비용이 비대칭적으로 배분되는 금융 구조를 비판하며 "시스템을 뒤흔든 파국은 거대 자본의 위험이 임계치를 넘어설 때 시작됐지만, 그 대가를 가장 가혹하게 치르는 건 가장 밑단의 개인들"이라고 지적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이 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이날 오전에 열린 중동상황 관련 비상경제점검회의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용범 정책실장이 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이날 오전에 열린 중동상황 관련 비상경제점검회의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실장은 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금융의 구조 시리즈' 두 번째 글에서 "금융위기가 휩쓸고 간 자리를 복기해보면 기이한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전날 '한국 금융은 왜 이토록 잔인한가: 신용등급이라는 불완전한 과학'이라는 글을 통해 신용평가와 금리 구조를 비판한 데 이어, 이날은 금융위기 이후 중저신용자가 시장에서 밀려나는 구조를 집중적으로 짚었다.


저축은행 사태, 레고랜드 사태, 조선사 부실, 주가연계증권(ELS) 등 파생상품 손실 사태를 거론하며 우리 금융사도 예외는 아니라고 꼬집었다. 김 실장은 "저축은행 사태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무리한 질주가 멈춘 결과였고, 레고랜드 사태는 당연시되던 보증의 신뢰가 하룻밤 새 무너진 참사였다"면서 "시스템을 마비시킨 거대한 폭발은 언제나 자본의 최전선, 그들만의 정교한 설계와 모델 속에서 잉태됐다"고 분석했다.

다만 개인의 책임이 없다는 뜻은 아니라고 했다. 김 실장은 "2000년대 초 신용카드 대란처럼 무분별한 소비가 사회적 홍역을 치르게 한 적도 있다"며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국지적인 부실이었을 뿐, 금융 시스템 전체를 무너뜨리는 재앙의 몸통은 아니었다"면서 오히려 개인은 이 거대한 성벽을 지탱하는 가장 성실하고 안정적인, 금융의 기초 토양에 가까웠다고 평가했다.


"위기 만든 몸통은 살아남고, 중저신용자가 문전박대당해"


이번 글에서 김 실장은 금융위기 이후 책임이 개인에게 전가되는 구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며 "위기를 만든 몸통들은 '대마불사'의 논리로 살아남거나 구조조정이라는 명분 뒤로 숨지만, 후폭풍은 대출 서류 한 장 들고 은행을 찾은 중저신용자들에게 향한다"고 했다. 리스크 관리라는 명목하에 가장 먼저 문전박대당하는 건 중저신용자라는 것이다.


김 실장은 이 같은 비대칭이 신용등급과 금리 구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면서 중간지대가 비어 있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상위 등급은 낮은 금리로 안온하게 자금을 조달하지만, 그 아래는 깎아지른 듯한 고금리의 절벽이 기다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간지대가 비어있는 점을 '커다란 도넛'에 비유하며 "양극단에는 시장이 존재하지만, 정작 가장 많은 사람이 머물러야 할 허리춤은 외면당한 채 방치되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김 실장은 사람의 삶과 신용은 본래 연속적지지만 금융은 이러한 연속정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키나 몸무게가 그렇듯 대부분의 사람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중간에 모여 있고, 위험도 그 궤적을 따라 점진적으로 변하는 게 자연스럽다"며 "금융의 렌즈는 이 무지개 같은 연속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직 '우량'과 '불량', '승인'과 '거절'이라는 이분법적 칼날로 사람의 인생을 잘라 낸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용점수 1점 차이로 1금융권의 문턱과 고금리 시장의 경계가 갈리는 것은 통계의 과학이라기보다 운영의 편의를 위한 단순화에 가깝다"고 지적하면서 "삶의 위험은 완만한 오르막인데, 금융이 내놓는 답안지는 중간 계단이 통째로 빠져버린 끊어진 사다리"라고 했다.


"중간지대 외면은 금융의 회피 전략…가성비 맞지 않는 구간"


이같이 중저신용자 금융 공급이 끊긴 이유를 금융회사의 '회피 전략'에서 찾았다. 금융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회피 전략 때문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김 실장은 "은행에게 중간 지대는 가성비가 맞지 않는 구간"이라며 "데이터가 깨끗한 우량 고객을 기계로 걸러내는 건 쉽고 싸다"고 했다. 반대로 "아주 높은 이자를 물려 리스크를 상쇄하는 고금리 시장도 나름의 수익 모델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중간지대는 다르다고 했다. 김 실장은 "이 사람이 정말 갚을 의지가 있는지 정밀하게 들여다보고 금리를 조정해야 하는 구간은 품이 많이 든다"며 "리스크는 관리해야겠고 비용은 쓰기 싫으니, 그 구간을 다루지 않는 선택이 더 합리적으로 작동해 온 셈"이라고 했다.


핀테크의 한계도 짚었따. 김 실장은 "핀테크가 등장하면 이 구도가 깨질 줄 알았다"며 "하지만 정보가 늘어날수록 선별은 날카로워졌을지 모르나, 회피라는 본성은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데이터는 사람을 돕는 도구가 아니라, 더 우아하게 거절할 명분을 찾는 근거로 전락했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정책금융 역할에 대해서는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결국 정부가 보증을 서고 금리를 낮추며 이 빈자리를 안간힘을 다해 메운다"며 "물론 필요한 일이고, 그나마 그래서 금융이 전면적으로 부정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건 임시방편일 뿐, 구조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며 "문제는 공급의 양이 아니라 공급이 멈춰버린 그 위치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장 어려운 사람은 높은 금리도 못 낸다…선택지 자체 박탈"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4.30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4.30 연합뉴스


김 실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제기해온 '왜 가장 어려운 사람이 가장 높은 금리를 내는가'라는 문제의식를 재차 언급했다. 그는 "현실은 그보다 더 나쁘다. 그들은 높은 금리를 내는 게 아니라 선택지 자체를 박탈당했다"면서 "시장에 입장할 티켓조차 얻지 못한 채 쫓겨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는 시장경제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볼 수 없으며 우연이 아니라 '치밀하게 방치된 구조적 모순'이라고 했다. 김 실장은 "금융은 완전한 자유시장이 아니다"라며 "국가의 면허를 받고, 공적 자금의 지원 아래 작동하는 제도적 산물"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의 이 처참한 결과 역시 철저히 설계된 구조의 산물"이라며 "위험은 연속적인데 금융은 그걸 가차 없이 끊어버리고, 그 경계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은 더 높은 비용을 감수하며 시장 밖을 떠돈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두번째 글에서도 "나 역시 이 시스템의 한복판에 있었기에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이 글은 누군가를 탓하기 전에 던지는 자백이자 반성"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가 만든 이 구조는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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