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입 과일을 파는 송모씨는 요즘 계산기를 두드릴 때마다 한숨을 내쉬는 게 일과다. 중동 전쟁 여파로 과일 도매가가 뛴 데다 포장용 박스와 부자재 비용까지 동반 상승하며 마진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송씨는 "과일은 신선도가 생명인데 포장을 대충 할 수도, 배송을 안 할 수도 없지 않냐"며 "줄일 수 없는 비용들만 오르니 장사를 어떻게 하나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 자영업자를 상대로 포장재를 납품하는 이모씨는 박스 원료인 '원지' 가격 상승으로 보름 전부터 판매가를 15% 올렸다. 이씨는 "고민 끝에 가격을 올렸더니 오랜 거래처도 '인상된 단가로는 못 버틴다'고 떠났다"며 "주문 자체가 줄어 매출이 반타작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같은 소규모 업자들은 당장 앞날이 캄캄할 만큼 위기감이 크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종합시장 한 가게에 복숭아가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중동 전쟁 여파가 영세 자영업자까지 타격하고 있다. 해상·항공 운임 상승으로 해외에서 들여오는 물건의 원가부터 포장재 등 핵심 고정비까지 치솟으며 마진을 깎아먹는 것이다.
4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중동 전쟁 발발 이후 해상·항공 운임은 50% 가까이 폭등했다. 해상운임지수(SCFI)는 2월 말 1333.11에서 4월 중순 1886.54로 41.5% 상승했고, 항공운임지수(BAI) 역시 아시아발 미주향 노선이 47.8% 오르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운임 폭등은 고스란히 도매가에 반영돼 수입 의류·가구·과일 등을 취급하는 자영업자에 직격탄이 된다.
여기에 포장재 비용까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폴리프로필렌(PP)·페트(PET)·폴리에틸렌(PE)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 가격은 전쟁 이전 t당 약 600달러 수준에서 지난달 한때 1200달러를 돌파하며 갑절 수준으로 올랐다. 원·달러 환율까지 1400원대 후반에 머물면서 플라스틱 용기·비닐봉지·일회용 수저 등 자영업 필수 소모품의 단가 상승 압박이 더욱 커지고 있다.
운임과 연동된 물건 매입가, 포장재 비용 등은 핵심 고정비다. 줄일 수 없는 비용이 치솟으면 영세 자영업자일수록 수익 구조가 악화한다. 실제로 서울 마포구 한 과일가게 점주 박모씨는 "5kg 망고 한 박스가 도매로 3만원이었는데 2주 만에 3만7000원으로 뛰었고 과일박스 값도 개당 300원씩 올랐다"며 "손님을 잃을까봐 판매가를 무작정 올리기도 곤란하다"고 털어놨다.
박씨가 판매하는 망고의 판매가를 중동 전쟁 이전 수준으로 유지한다고 가정하면, 상승한 과일 도매가(7000원), 박스값(300원), 포장용 부자재(500원) 등을 합쳐 건당 최소 7800원의 추가 지출을 감당해야 한다. 하루 10건씩, 한 달에 300건의 물량을 판매할 경우 매달 약 234만원 수준의 추가 부담이 생기는 것이다. 기존 마진의 절반가량이 손실로 상쇄되는 셈이다.
'배송' 없이 판매가 불가능한 소규모 온라인 판매업자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주문마다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택배 박스·완충재·테이프 등 포장 원가가 일제히 오른 탓이다.
한국골판지포장산업협동조합에 따르면 박스의 원재료인 원지 가격은 최근 4개월간 18.0%가량 올랐다. 특히 최근 원지 공장의 잇따른 화재와 산업재해로 일부 생산이 중단되면서 지난 1월 재고는 예년 평균 20만t 대비 40.0% 줄어든 15만t까지 떨어졌다. 여기에 ▲접착제 55.0% ▲인쇄용 잉크 22.0% ▲포장용 랩 20.0% 등 부자재 가격이 폭등하며 비용 압박을 가중하고 있다.
현실적인 지원책은 마땅치 않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관계자는 "현재 지원 가능한 정책 자금은 이미 소진됐다"며 "추가 지원을 위해서는 3분기까지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거시적인 가격 변동 요인을 개별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데다 파편화된 영세 사업자들에게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는 것 또한 행정적 한계가 크다"며 "비용 충격이 잦아들 때까지 버텨내는 선택지뿐이라 할 만큼 상황이 어렵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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