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교의 트레이드 오프]포스트 오일 시대…석유 카르텔, 종언의 서막

UAE의 OPEC 탈퇴 배경과 의미

안보위기·탈석유 전략 결합
산유국들 연쇄적 증산 예상
트럼프 "시장 자유화의 승리"
글로벌에너지 주도권 이동
생산자에서 소비자·시장으로

[정인교의 트레이드 오프]포스트 오일 시대…석유 카르텔, 종언의 서막

지난 1일 아랍에미리트(UAE)가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공식적으로 탈퇴했다. 1960년 창설 이래 세계 에너지 시장을 쥐락펴락해 온 OPEC 카르텔의 역사상, 핵심 산유국의 자발적이고 전략적인 이탈은 전례를 찾기 힘든 '메가톤급 충격'이다.


세계 7위의 석유 매장량과 하루 350만배럴의 생산 능력을 갖춘 원유 대국의 결정은 단순한 외교적 마찰이나 산유국 간의 일시적 갈등으로 치부할 수 없다. 이는 다가오는 '포스트 오일(Post-Oil)'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한 국가의 절박한 생존 전략이자, 반세기를 지배해 온 글로벌 에너지 패러다임이 붕괴하고 있음을 알리는 서막이다.

우선 UAE가 과감히 탈퇴 카드를 꺼내든 배경의 이면에는 중동의 척박한 지정학적 현실과 엄중한 안보 위기가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사이에 두고 이란과 좁은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UAE는 지정학적 리스크의 최전선에 노출돼 있다. 2019년 유조선 피격 사건과 2022년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반군이 아부다비 도심을 드론으로 타격한 사건은 UAE 지도부에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특히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 양상 속에서, 이란이 미국의 전초기지로 간주되는 아부다비 알 다프라(Al Dhafra) 공군기지 등을 향해 무려 3000발의 미사일과 드론을 쏟아부은 사건은 안보 지형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본부. AFP연합뉴스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본부. AFP연합뉴스

이러한 실존적 위협 앞에서 UAE는 F-35 전투기 도입, 독자적 방위산업 육성, 그리고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 방공망 배치 등 막대한 국방비 지출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과거 사우디아라비아가 제공하던 중동의 '안보 우산'이 예멘 전쟁의 수렁 속에서 그 한계를 드러내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이른바 '자주국방'의 막대한 재원이 당장 필요해진 것이다. 그러나 감산을 통해 유가를 부양하려는 OPEC의 낡은 쿼터제는 막대한 현금이 필요한 UAE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됐다. 안보를 위해 돈 쓸 곳은 산더미인데, 거대한 석유 생산 설비를 갖추고도 카르텔의 규제에 묶여 원유를 팔지 못하는 모순적 상황이 임계점에 달한 것이다.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UAE가 그리고 있는 '탈석유(Post-Oil) 경제'로의 국가 대전환 전략에 있다. 1971년 7개 에미리트(토후국)의 연방으로 출범한 UAE는 아부다비에 집중된(96%)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성장해 왔다. 하지만 이들은 중동 어느 국가보다 빠르게 석유 이후의 시대를 준비해 왔다. 이미 2024년 기준으로 비(非)석유 부문이 국내총생산(GDP)의 75.5%를 차지할 만큼 경제 다변화에 성공했다. 관광, 금융, 항공, 물류, 첨단기술, 재생에너지 등 미래 산업을 육성하며 중동의 '뉴욕이자 싱가포르'로 자리매김했다.

[정인교의 트레이드 오프]포스트 오일 시대…석유 카르텔, 종언의 서막

과거에는 중동에 전쟁의 전운이 감돌면 유가가 치솟아 산유국들이 '어부지리'를 얻었다. 하지만 경제 구조가 고도화된 현재의 UAE에 중동의 위기는 곧 물류비 상승, 보험료 폭등, 글로벌 투자 자본 이탈을 의미하며, 이는 애써 키워온 비석유 부문의 치명적인 타격으로 직결된다. 게다가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흐름 속에서, 땅속에 묻힌 석유의 가치는 머지않아 '0'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냉혹한 계산이 깔려 있다.


따라서 UAE의 국가 핵심 전략은 명확하다. 석유의 시대가 저물기 전에, 유가 하락을 감수하고서라도 시장 점유율을 극대화하여 최대한 많은 석유를 팔아치우고 그 막대한 현금을 미래 생존을 위한 첨단 산업과 안보 자산에 재투자하겠다는 것이다.


UAE의 결단은 곧바로 글로벌 원유 시장의 권력 지도를 뒤흔들고 있다. 1960년 사우디 주도로 결성된 OPEC은 2016년 러시아 등 비OPEC 국가를 끌어들인 'OPEC+' 체제로 몸집을 불렸지만, 내부 결속력은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재정 균형을 맞추기 위한 목표 유가가 국가마다 다른 상황에서 사우디처럼 체력이 있는 국가는 고육지책으로 감산을 주도했지만, 재정이 파탄 난 이란,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등은 암암리에 쿼터를 어기며 증산의 유혹에 시달려왔다.


이러한 '동상이몽'의 카르텔에서 가장 경쟁력 있고 생산 여력이 큰 UAE가 이탈했다는 것은 OPEC+의 가격 통제력이 사실상 붕괴 단계에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미국의 셰일 혁명과 비OPEC 국가들의 공급 확대 속에서 사우디의 시장 조정 능력은 이미 예전 같지 않다. UAE의 탈퇴 직후 열릴 향후의 OPEC 회의는 사우디의 통제력을 시험하는 무대가 될 것이며, 사우디 역시 강력한 가격 방어와 시장 점유율 수호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UAE의 결정을 "소비자에게 유리한 결정이자 시장 자유화의 승리"라며 즉각 반색한 것은, 카르텔의 약화가 미국의 국익과 세계 경제에 미칠 긍정적 파급력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4월30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국제유가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4월30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국제유가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결론적으로 UAE의 OPEC 탈퇴는 단기적인 시장의 출렁임을 넘어, 세계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예고하는 역사적 변곡점이다. 당장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과 지정학적 리스크, 그리고 시장점유율 방어를 위한 산유국들의 셈법이 얽히면서 단기적인 유가의 변동성은 커질 수 있다. UAE 역시 '책임 있는 공급자'를 자처하며 당장의 급격한 증산은 자제하겠지만, 하루 500만배럴까지 생산 능력을 확대하려는 그들의 행보는 결국 다른 산유국들의 연쇄적인 '증산 경쟁(Market Share War)'을 촉발할 뇌관이다.


중장기적으로 이는 글로벌 유가의 강력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정 소수 국가가 밀실에서 공급량을 조절하여 전 세계 소비자의 부를 착취하던 카르텔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산유국들은 각자도생의 치열한 경쟁 속으로 내몰릴 것이며, 이는 고물가와 에너지 비용에 신음하던 세계 경제,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에너지 수입 주도형 국가들에게는 가뭄 속 단비와 같은 장기적 호재다.


UAE의 선택은 분명하다. 가라앉는 OPEC이라는 배에서 먼저 탈출해, 확보한 구명보트(막대한 현금)로 새로운 미래(포스트 오일)의 목적지를 향해 노를 젓겠다는 것이다. 화석연료의 황혼기, 살아남기 위한 중동 국가들의 거대한 각성이 시작됐다. 우리는 지금 석유 카르텔의 종언과 함께, 글로벌 에너지 주도권이 생산자에서 소비자와 시장으로 넘어오는 장엄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목격하고 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전 통상교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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