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공시대상 기업집단'과 '동일인(총수)'으로 처음 지정된 시기는 2021년이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김범석 쿠팡 Inc 의장의 지배력은 명백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외국인 총수를 규제할 '현행 제도의 미비'와 '형사 제재 실효성' 등을 이유로 '법인 쿠팡'을 총수로 지정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를 통해 간접 감시가 가능하다는 논리도 폈다. 그로부터 3년 뒤 외국인도 친족 경영 미참여 등 예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총수로 지정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개정했지만, 김 의장은 이 요건을 충족한다는 판단하에 총수 지정을 또다시 피해 갔다.
총수 '법인 쿠팡'은 5년 만에 돌연 뒤집혔다. 공정위는 김 의장 친동생의 '실질적 경영 참여'를 근거로 '자연인 김범석'을 총수로 변경 지정했다. 동생이 형식적으로는 임원이 아니며 지분도 없지만, 보수 수준이나 회의 주재 횟수 등을 봤을 때 경영 참여로 볼 수 있기에 예외 요건을 벗어났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브리핑 현장에서 경영 참여의 명시적·정량적 기준이 있냐는 질문에 공정위는 "실질적 영향을 근거로 잘 판단했다"는 식의 애매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과거 지정 제외 사유였던 형사 제재 실효성 문제에도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는 논리는 사상 첫 미국 상장사 CEO의 총수 지정과 통상마찰 가능성까지 겹친 사안의 무게감과 격이 맞지 않는다. 경영참여를 확인했다는 과정 역시 허술하기 짝이 없다. 동생 김 씨의 부사장급 지위를 지난해 국회 청문회를 통해서야 알았다고 시인했다. 제보가 있고 나서야 뒤늦게 현장 점검에 나섰다. '법인 쿠팡'이 총수로 유지된 5년간 '안방 행정'을 고백한 셈이다.
공정위는 '경제 검찰'로 불린다. 법과 절차를 엄격하게 준수해야 하며, 그 논리는 누구보다도 치밀해야 한다. 담합 사건 하나에 수만 페이지의 보고서를 검토하고, 1년 가까이 시간을 쓰는 곳이 공정위다. 그런 기관이 유독 동일인 제도 운용에서는 번번이 허술함을 보인다. 잣대가 고무줄처럼 변하니 쿠팡이 행정소송을 예고한 것도 당연한 수순으로 비친다. 국민적 반감을 의식해 지정을 강행한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허술한 논리와 제도 집행은 권위를 깎는다.
쿠팡은 시작일 뿐이다. 동일인 제도가 탄생한 1986년 창업주 일가는 내국인 일색이었다. 지금은 2세가 외국인 혹은 이중국적인 기업집단이 16곳(2023년 기준)에 달한다. 3·4세로 갈수록 이 비중은 늘어날 것이다. '제2의 쿠팡'이 줄지어 나올 수 있다. 외국인 총수 지정에 대한 명시적이고 정량적인 기준의 확립, 형사 제재의 실효성 담보를 포함한 대대적 손질이 시급하다. '갈라파고스 규제'라며 폐지를 주장하는 재계 목소리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쿠팡이 공정위에 던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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