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반려동물) 엑스레이 촬영비가 평균 4만6000원인데, 아기 전신 엑스레이(Infantogram)를 찍고 병원이 받는 수가는 1만3700원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심사 단계에서 삭감되기 일쑤다."
최용재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장(의정부 튼튼어린이병원장·사진)이 30일 우리나라 소아의료 위기의 본질을 "소아 진료를 어른의 잣대로 재단한 잘못된 제도에서 기인했다"며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최 회장은 현재 소아청소년과 진료 현장의 가장 큰 문제로 성인 환자를 기준으로 한 심사 및 급여 체계를 꼽았다. 소아 환자만의 의학적 특수성을 반영한 별도의 기준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유아 요로감염 진단용 '소변수집 패치(소변주머니)'다. 성인과 달리 스스로 소변을 받아낼 수 없는 영유아에겐 패치 부착이 필수적이지만, 현행 급여 체계에서 이 패치는 중환자실이 아니면 '산정불가' 품목으로 분류돼 병원이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한다. 최 회장은 "패치가 떨어지거나 소변이 샐 경우 아기 한 명당 4~5개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검사비(2010원)보다 소모품 값(개당 800~1000원)이 더 비싸 진료할수록 적자가 쌓인다"고 토로했다.
소아 혈액가스검사(ABGA)도 마찬가지다. 호흡곤란이나 패혈증이 의심되는 소아 응급환자의 동맥혈을 무리하게 찌르는 대신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인정하는 가이드라인을 따라 정맥혈을 채취했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왜 성인처럼 동맥혈을 뽑지 않느냐"며 3년치 진료비를 무더기 삭감·환수 조치했다. 최 회장은 "의사가 청진기와 주사기를 들기 전 환수 통지서부터 먼저 걱정하게 만드는 비극"이라고 일갈했다.
의학적 표준과 동떨어진 급여 기준도 문제 삼았다. 자가면역성 뇌염이 의심될 경우 국제 표준은 뇌 손상을 막기 위해 즉시 '면역글로불린(IVIG)'을 투여하라고 권고하지만 우리 심사 당국은 3주나 소요되는 '확진 결과'를 요구한다. 최 회장은 "의사가 교과서대로 치료하면 진료비가 삭감되고, 심평원 기준대로 기다리면 아이의 뇌가 망가진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어린이병원 설립에 대해서도 최 회장은 쓴소리를 했다. 이미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떠나고 있는 상황에서 병원만 새로 짓는 건 실효성이 낮다는 주장이다. 최 회장은 "새 병원을 채울 인력은 결국 그 지역 소아청소년병원에서 빠져나가게 되고, 이는 간신히 버텨온 기존 인프라마저 무너뜨리는 셈"이라며 "신축 예산의 일부라도 병원의 사법 리스크 완화와 야간 의료진 인력 보전에 투입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확실한 대안"이라고 조언했다.
이에 따라 소아청소년병원협회에서는 ▲성인과 분리된 '소아 독립 건강보험 급여기준' 신설 ▲국가책임 강화를 위한 '소아 진료수가 가산'의 법적 근거 마련 ▲보건복지부 내 '소아청소년 의료전담 부서' 설치 등을 요구하고 있다.
최 회장은 "우리나라는 영아 사망률 세계 최저, 소아암 생존율은 85%를 상회할 만큼 소아의료 수준이 높다"며 "하지만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이 한 자릿수에 불과하고, 지난 5년간 소아청소년과 의원 662곳이 문을 닫는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이제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에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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