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할 땐 '하나'라고 강조했는데 문제가 생기니 알아서 따로 처리하라고 하네요."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준비하던 박모씨(39)는 출발을 한달여 앞두고 여행사로부터 항공 일정이 변경됐다는 안내를 받았다. 기존보다 하루 늦춰진 출발 편이었다. 숙소와 현지 일정까지 모두 맞춰둔 상태에서 일정이 모두 꼬여버린 것이다. 그는 여행사에서 항공과 숙박을 한 번에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상품을 골랐었다. 여행사는 결제할 때까지만 해도 항공과 숙박 예약이 패키지란 점을 강조했는데, 막상 일정이 꼬이니 "호텔과 직접 협의하라"는 안내뿐이었다.
챗GPT 생성 이미지
편의성을 앞세운 결합형 자유여행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항공 일정 변경 시 발생하는 피해는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예약 단계에선 혜택 위주로 부각하고 불리한 정보는 '상세보기' 속에 겹겹이 숨겨놓는 여행사의 고지 방식이 피해를 키운다는 지적이다.
30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항공여객운송서비스 피해구제 건수는 2023년 1705건, 2024년 2537건에서 2025년 3201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올해 1분기에도 벌써 761건이 접수됐다. 항공여객운송서비스 피해구제는 항공편 지연·결항이나 취소 위약금 등으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소비자가 당한 권익 침해에 대해 한국소비자원이 중재하거나 보상·환급 등을 돕는 절차다.
박씨가 이용한 A 여행사는 일정만 선택하면 한 화면에서 항공과 호텔을 손쉽게 고르고 결제까지 이어지도록 예약 절차를 간소화한 점을 앞세웠다. 자유여행을 선호하는 여행객을 유치하고 회원가입을 유도하는 상품이다. 일정을 선택하고 호텔까지 고르면 'A 여행사 회원에게만 제공되는 혜택'이라며 로그인 유도 창이 뜨고 로그인 이후 예약 화면으로 넘어가는 수순이다.
안내사항에 담긴 내용은 '항공 변경이 필요할 시 항공과 호텔을 재검색해야 한다' '상품별로 결제되기 때문에 발권 수수료 포함 최대 13회 카드 승인이 이뤄질 수 있다' 등 일반적인 내용에 그친다. 일정이 항공사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는 내용은 결제 직전 '항공 상세일정' 항목에서 '요금·환불 규정 및 상세일정 보기'를 누른 뒤 '상세보기'를 한 번 더 눌러야 나온다.
박씨는 "연박을 조건으로 할인받은 숙소라 하루만 줄여 다시 예약하면 요금이 더 오른다고 했다"며 "항공편을 다시 구하거나 숙소를 새로 잡으면 80만~100만원이 추가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예약할 땐 하나의 여행처럼 강조해놓고 막상 문제가 생기니 전부 알아서 따로 처리하라고 한다"며 "이럴 거면 왜 여행사에 수수료까지 주고 묶어서 샀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겹겹이 숨겨진 안내를 찾아 들어가면 확정된 요금·일정 등이 각 항공사 사정에 의해 공지 없이 변경될 수 있으며 이 경우 임의의 스케줄로 변경되거나 운임 차액이 발생할 수 있다는 취지의 설명이 나온다. 그러나 이 경우 숙박 예약을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 추가 비용이 어떤 식으로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주의는 전무하다. 박씨는 A 여행사 측에 추가 비용을 최대한 줄여 기존 일정대로 출발하고 싶다고 문의했지만 "손해배상 의무가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항공사와 여행사는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 일정이 지연된 B 항공사 관계자는 "여행사를 통해 발권한 경우 여행사를 통해 일정 변경에 따른 보상을 요청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A 여행사 관계자는 "호텔 협조가 없으면 피해를 보전해줄 근거가 없다"며 "발권을 매개하는 역할을 다했으니, 유가 인상 등 사정에 따른 변경은 항공사가 도의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한국소비자원은 결합 형태로 판매되는 여행상품의 경우 일정 변경 시 발생할 수 있는 비용과 절차를 소비자가 미리 알 수 있도록 고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비자가 약관을 꼼꼼히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듯이, 그만큼 여행사도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안내했어야 한다는 취지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패키지 상품과 달리 항공과 숙박이 결합된 상품은 책임 소재가 모호한 측면이 있다"며 "안내가 보다 명확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는 항공사와 여행사가 책임져야 할 비용이 소비자에게 떠넘겨지고 있다고 봤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과 교수는 "항공사들이 기존 운임으로 운항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면서 일정 취소나 변경이 늘고 있는데 여행사는 이에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운임 상승이나 운영 부담은 원칙적으로 사업자가 감내하거나 가격에 사전 반영해 조정해야 할 영역"이라며 "사후적으로 소비자에게 부담이 넘어가는 구조는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