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용서'라는 게 있다. 아무 대가 없이 쉽게 주어지는 용서는 사람을 바꾸지 못하고 잘못을 빠르게 반복시킨다는 얘기다.
현행 만 14세 미만인 촉법소년 연령이 수년째 논란인 이유가 그렇다. '어차피 크게 처벌받지 않는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가해자에게도 진정한 변화의 계기를 제공하지 못하는, 사회가 제공 중인 값싼 용서다.
지난 2월 이재명 대통령이 촉법소년 연령 하향 검토를 지시하며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지만 논란의 역사는 짧지 않다. 소년강력범죄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될 때마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 시도가 이뤄졌다. 그러나 효과적인 대응이 되지 못한다는 반대의견에 따라 그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1953년 관련 형법이 만들어진 당시와 지금의 범죄 환경은 달라졌다. 촉법소년 수는 2021년 1만명을 넘기더니 불과 4년 만에 2만1958명으로 두 배가 됐다. 같은 기간 강간, 강제추행, 성폭력, 청소년 성 보호법 위반 등 성범죄는 818명에서 1268명으로 55% 늘었다.
소년범죄는 강력범죄는 물론 디지털 범죄로까지 확대됐다. 지난해 6월 충주 수영부 집단 성폭력 사건에서 14세 미만 가해자 3명은 법원 소년부로 송치돼 보호처분을 받았다. 같은 해 8월에는 중학교 1학년생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신세계백화점 본점 폭파를 암시하는 허위 글을 올렸으나 형사처벌을 피했다. 이미 성인 수준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데, 법은 이들을 '아이'로 보고 있는 셈이다.
형사처벌 대신 보호처분을 받는 이 '면책 구간'을 악용하는 범죄도 늘었다. 마약을 판매하는 범죄 집단이 촉법소년을 운반책이나 실행자로 이용한다. 소년들 역시 '처벌받지 않는다'는 자신감에 범죄에 적극 가담한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이 소년범죄의 예방과 재범 방지라는 근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주장에도 근거는 있다. 소년범죄의 저연령화와 흉포화에 대응한다는 의미에서 국회는 2007년 소년법을 개정해 보호처분 대상자의 연령을 만 12세에서 만 10세로 낮추고 소년법 적용 상한 연령은 만 20세에서 만 19세 미만으로 조정했다. 이 결과가 지금의 상황이다. 형사책임 연령의 하향은 소년범죄 억제에 실질적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제는 '한 살 낮춘다고 범죄가 줄어드느냐'는 질문에만 매달릴 상황이 아니다. 피해자 고통에 대한 책임 부과도 법에 포함해야 한다. 언제까지 가해자의 교화와 재범방지에만 초점을 맞춘 법을 운용할 수는 없다. 수년째 국민 80~90%가 찬성하고 있다면, 이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로 볼 수 있다.
촉법소년 연령을 하향하되 '처벌 만능주의'에 몰입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방법이다. 소년사법절차의 개선과 정비, 소년범에 대한 처우 개선, 피해자 권리 보장 등도 입체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연령을 낮춰도 소년부에 송치하고 흉악범죄에 한해서만 처벌하는 것도 가능하다.
학교와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개입도 필요하다. 보호처분을 받은 아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가정폭력 피해자인 것으로 집계됐다. 학교는 상담 인력과 사회복지 인력을 확충해 위험 신호를 조기에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 중심의 안전망과 멘토링 시스템도 손봐야 한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단순한 처벌 강화가 아니다. 가해자의 책임과 피해자의 보호를 정비하는 균형의 시작이다. 용서가 값싸게 소비되는 사회를 방치하면 국민 법 감정은 더 다양한 곳에서 괴리를 보일 수밖에 없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책임이 따르는 공정한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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