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 확보를 계기로 K-방산 대형화 논의가 물꼬를 트면서 산업 재편의 방향과 방식을 둘러싼 논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규모 확대 필요성과 특정 기업 쏠림에 따른 과점 우려가 맞물리며, 이를 통제할 제도 설계와 생태계 구축 방안으로 시선이 모인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방산 대형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지만, 추진 방식에 따라 산업 경쟁력과 생태계 건전성이 크게 갈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기업이 개발·생산·납품을 모두 떠안는 구조는 의사결정 속도와 효율 측면에선 강점이 있지만, 해당 기업이 흔들릴 경우 산업 전체가 휘청일 수 있다. 대형화의 효율을 살리되 리스크를 분산할 통제 장치를 갖춘 산업 구조 설계가 핵심 과제로 떠오른 배경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부의 견제장치 마련 ▲체계종합기업·중소중견기업 간 생태계 분업 ▲복수 기업 중심의 다극 체제 유지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세 방안은 상호 배타적이라기보다 병행 가능한 설계 원칙으로 볼 수 있다.
먼저 정부가 방산기업 지분을 일정 수준 보유하거나 황금주, 즉 핵심 의사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소수 지분 주식을 도입해 견제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후발주자인 한국이 앞서 대형화를 이룬 국가의 시행착오를 참고해 공적 안전장치를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민간 경영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 방산 연구원은 "정부 역할은 산업 방향 설정과 경쟁 구도 유지"라며 "지분 통제는 과도한 개입일 수 있어 제도 설계를 통한 산업 구조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접 통제보다 생태계 구축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장원준 전북대 첨단방산학과 교수는 "국내 방산기업의 대형화는 단순한 내부 통합을 넘어 해외 기업 인수와 현지 생산 거점 확보를 병행해야 한다"며 "체계종합기업과 중소·중견 소부장 기업이 역할을 나누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정부는 산업 구조의 큰 방향을 설정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정 기업 중심 재편 대신 복수 기업이 경쟁과 협력을 병행하는 다극 체제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대표 사례로는 지대공미사일 '천궁'이 꼽힌다. LIG넥스원이 체계종합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발사대를, 한화시스템이 다기능레이더를 각각 맡아 개발한 협력형 통합 모델로, 경쟁과 효율을 동시에 확보한 구조로 평가된다.
이 같은 대안 모색은 앞서 대형화를 이룬 국가들의 시행착오에서 비롯됐다. 미국 록히드마틴의 F-35 전투기는 단일 플랫폼 중심 개발 구조로 단일 사업비가 1700억달러를 넘어섰지만, 생산 지연과 부품 공급망 축소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 내 방산업체 수가 줄면서 일부 부품 공급망이 위축된 점도 구조적 취약성으로 거론된다.
장 교수는 "대형화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특정 플랫폼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가 리스크를 키우는 것"이라며 "핵심 부품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해외 생산 거점을 병행하는 분산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업계에서는 단순 납품단가 인하 구조를 넘어 원가를 합리적으로 보전하고 적정 이윤을 인정하는 협업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체계종합기업 중심 대형화와 함께, 중소·중견기업이 글로벌 기준과 조달 절차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미국 사례는 규모 확대의 필요성과 과점 리스크를 동시에 보여준다"며 "핵심은 얼마나 키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결국 통합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지만, 추진 방식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김만기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방산수출전문가양성과정 책임교수는 "방산 대형화의 성패는 중소기업을 단순 하청이 아닌 글로벌 공급망의 전략적 파트너로 키울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방산 호황에 힘입어 한화·KAI·LIG 등 주요 방산 기업집단 순위가 일제히 상승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전날 발표한 '2026년 공시대상기업집단'에 따르면 한화그룹은 자산 총액 149조6050억원(전년 대비 19% 증가)을 기록하며 7위에서 5위로 올라 사상 처음 롯데·포스코를 제쳤다. KAI는 62위에서 53위로 9계단, LIG는 69위에서 63위로 6계단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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