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의원 11명이 발의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광주 이전 법안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하지만 여전히 예술교육의 본질과 문화생태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교육기관 하나 이전한다고 그 지역이 예술 중심지로 탈바꿈할까.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품었던 안성은 영화 도시가 되지 못했다. 홍익대의 예술·디자인 교육 기능 일부가 세종캠퍼스에 구축돼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수도권 학교를 선호하는 학생들이 서울 소재 대학 진학으로 방향을 틀어버리는 역효과를 낳았다.
창작 분야와 다른 산업 분야는 작동 원리가 다르다. 철강·기계 등 산업은 거대한 설비와 물적 자본에 의존한다. 생산시설을 이전하면 관련 협력망이 함께 움직이고, 작업 지침서만 있으면 노하우가 옮겨진다. 반면 창작 영역은 개인의 숙련도와 인적 네트워크에 기반한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암묵적 전수는 장기간 밀착된 협업 속에서만 체득된다.
예컨대 뮤지컬 한 편을 무대에 올리기까지는 실기 교습 시설과 전문 코치진, 오디션 중개업체, 비평 플랫폼, 법률·저작권 서비스업 등이 동원된다. 이들 업체는 단일 장르만으로 수익을 낼 수 없다. 영화·드라마·광고 등과 결합해야 살아남는다. 이런 복합 생태계가 작동하는 곳은 현재 서울밖에 없다.
공연예술 교육은 주변 환경에 크게 좌우된다. 성악이나 무용 분야 인재는 유년기부터 체계적으로 훈련받는다. 잠재력을 보인 어린 학생들은 이른 시기부터 정상급 예술가로부터 사사하며 실력을 쌓는다. 이런 교육이 이뤄지는 한예종 서초동 캠퍼스 인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음악도시다. 개인 트레이닝 공간과 경연 무대, 악기·악보 전문점, 대형 공연장, 교육기관 등이 촘촘하게 얽혀 있다.
정치권은 '비수도권 쇠퇴 방지'라는 명분만 앞세워 한예종 이전을 주장한다. 실질적으로 효과를 내려면 공공 공연단체들의 광주 지사 개설부터 민간 제작사 이전 인센티브, 대형 공연장 인프라 구축까지 포괄적 패키지가 동반돼야 한다.
카이스트 대전 이전 사례를 거론하기도 한다. 이공계 연구는 소수 전문가 간 협업만으로도 학술지에 성과를 발표할 수 있지만, 예술가는 대중 앞에 서야 완성된다. 공연예술에서 무대는 교실이자 평가 기회이고 지향점이다. 전통음악처럼 향유층이 제한적인 분야를 비수도권으로 보내는 것은 소비자 접근성을 더 떨어뜨릴 수 있다.
문제는 한예종을 어디로 보낼지가 아니다. 비수도권에 문화산업 클러스터를 만들 의지와 자원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학교 건물 하나 옮기는 게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사회적 자본과 네트워크, 문화적 토양을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이런 계획 없이 학교만 옮기자는 발상은 문화정책이 아니라 지역 표심 계산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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