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 포성보다 빠른 연산, 알고리즘이 재설계한 현대전의 문법

드론·전자전·AI·위성통신… 중동의 밤하늘에서 시작된 미래전

[과학칼럼] 포성보다 빠른 연산, 알고리즘이 재설계한 현대전의 문법

전쟁의 문법이 바뀌고 있다. 포성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승패를 가르는 시대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적외선이 표적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재밍(Jamming)과 스푸핑(Spoofing)이 뒤엉킨 전자기장의 바다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 좌표들이 충돌한다.


과거의 전쟁이 화약의 양과 철갑의 두께로 승패를 겨뤘다면, 지금 중동과 유라시아에서 목격되는 미래전은 누가 더 빠른 연산 칩을 가졌는지, 그리고 그 데이터가 얼마나 끊이지 않고 정확하게 유지되는지의 싸움으로 변모했다. 이제 전장의 언어는 포성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압축한 판단의 속도로 바뀌고 있다.

소프트웨어가 된 무기, '업데이트'되는 전장


이번 전쟁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스텔스 전투기가 아니라, 조종사가 1인칭 시점(FPV)으로 적진을 누비는 수십만 원짜리 저가 드론의 확산이다. 미국 CBS 인터뷰에서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CIA 국장이 "우크라이나에서 드론은 전장의 심장박동"이라고 표현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드론은 더 이상 보조 수단이 아니다. 감시와 식별, 타격이 실시간으로 통합된 '지휘통제 생태계' 그 자체가 됐다.

드론 군집비행과 병사의 실시간 전장 통제가 결합된 현대전의 개념 이미지. 전장은 병력 규모보다 센서, 통신, 알고리즘의 연산 속도가 승패를 좌우하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chatGPT 생성이미지.

드론 군집비행과 병사의 실시간 전장 통제가 결합된 현대전의 개념 이미지. 전장은 병력 규모보다 센서, 통신, 알고리즘의 연산 속도가 승패를 좌우하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chatGPT 생성이미지.


더 중요한 변화는 무기가 '업데이트'된다는 점이다. 과거의 무기체계는 공장에서 출고되는 순간 성능이 고정되는 하드웨어였다. 하지만 현대의 드론은 전장에서 실시간으로 진화한다. 적군이 특정 주파수로 재밍을 걸어 드론을 무력화하면, 엔지니어들은 불과 수 시간 만에 통신 알고리즘을 가져와 다시 투입한다. 전장의 무게중심이 제조업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으로 이동하면서, 무기는 이제 완성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프로그램'이 됐다. 이제 승패는 공장의 생산 라인이 아니라 개발자의 키보드 위에서 결정된다.


전자기장이 지형이 되고, 열(熱)은 데이터가 된다


현대전의 가장 치열한 격전지는 인간의 감각이 닿지 않는 전자기장 속에 형성돼 있다. GPS 신호를 교란하거나 가짜 신호를 주입하는 전술은 상공의 지도를 지워버려 정밀 유도무기를 '눈먼 화살'로 만든다. 하지만 과학기술은 이 공백을 메울 대안을 제시한다. 카메라 영상으로 지형을 대조해 위치를 파악하는 '비주얼 오도메트리(Visual Odometry)'와 관성항법장치(INS)는 기계가 외부 신호 없이도 스스로 길을 찾게 만든다. 하늘은 열려 있으나 좌표가 사라진 공간에서 기계는 스스로 지도를 그리며 전진한다.


동시에 '은폐'라는 고전적 전술도 무력화됐다. 고감도 적외선 센서와 AI 노이즈 제거 기술은 먼지와 연기 너머의 미세한 열기까지 읽어낸다. 병사의 체온, 엔진의 잔열, 심지어 지하 벙커의 미세한 온기까지 모두 데이터로 환원된다. 유럽정책분석센터(CEPA)는 이를 두고 "보이지 않는 전자기장이 새로운 지형이 됐다"고 분석한다. 전장은 투명한 수족관처럼 노출됐으며, 이는 저잡음 읽기회로와 고속 영상처리 칩 등 반도체 기술이 빚어낸 결과다. 이제 '숨는다'는 것은 물리적 차폐를 넘어 전자기적 신호와 열적 흔적까지 지워야 하는 고도의 기술 경쟁이 됐다.

[과학칼럼] 포성보다 빠른 연산, 알고리즘이 재설계한 현대전의 문법

인간보다 먼저 도착하는 판단, AI와 위성통신의 전장


전쟁의 신경망 역할을 하는 것은 저궤도 위성통신망(LEO)이다. 지상 기지국이 파괴된 폐허 속에서도 드론 영상과 표적 좌표는 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기존 위성이 가졌던 수백 밀리초(ms)의 지연시간을 수십 밀리초 단위로 단축하면서, 지구 반대편의 조종사가 현장에서 직접 무기를 다루는 듯한 '실시간 전장'이 구현된 것이다. 이제 전장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화약의 파괴력이 아니라, 끊기지 않는 데이터 전송 속도다.

여기에 AI 기반 표적 추천 시스템이 결합하면서 전쟁의 시간 개념은 더욱 압축된다. 과거 지휘관이 지도 위에서 수십 분간 고민하던 과정은 이제 센서 융합과 모델 추론을 거쳐 찰나의 순간에 결정된다. 이스라엘의 AI 시스템 '라벤더(Lavender)'와 '합소라(Habsora)'는 이런 흐름의 단면을 보여준다. 영국의 가디언은 AI 기반 표적 추천 시스템이 공습의 속도를 인간의 기존 검토 속도보다 크게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 압도적인 효율성이 인간의 판단을 기계의 계산에 대한 '단순 승인' 행위로 축소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감정까지 겨누는 알고리즘, 칩 위에 세워진 비극


현대의 정보전은 생성형 AI에 의해 더욱 교묘해졌다. 딥페이크 연설, 조작된 전황 이미지, 자동화된 로봇 계정은 적국뿐 아니라 국제 여론 전체를 흔든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왜곡하는 수준을 넘어 사람들의 믿음과 공포를 인위적으로 설계하는 '인지전(Cognitive Warfare)'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전쟁은 이제 탱크의 전진을 넘어 상대의 감정 구조를 어떻게 오염시킬 것인가의 싸움으로 확장됐다.


이 모든 기술적 진보의 토대에는 결국 반도체가 있다. 드론의 제어 칩부터 AI 연산을 버티는 서버급 GPU까지, 전쟁의 모든 행위는 실리콘 칩 위에서 실행된다. 미래전은 화약의 양보다 데이터가 얼마나 정확하게 살아남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적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시스템의 핵심 역시 날아오는 궤적을 인간보다 먼저 계산해내는 연산 능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정점에서 묻는 인간의 자리


과학기술은 전쟁을 더 정밀하고 효율적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인류를 전례 없는 도덕적 딜레마로 밀어 넣었다. 알고리즘은 효율만 계산한다. 그 결과가 낳을 비극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기술이 인간의 판단 속도를 추월해버린 전장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보루는 무엇인가.


결국 더 중요한 것은 칩의 성능이 아니라, 그 칩의 결정을 끝까지 의심하고 검토할 인간의 윤리적 의지다. 우리는 지금 총성과 폭발음 뒤에서 작동하는 차가운 알고리즘의 시대를 목격하고 있다. 전쟁의 형태를 결정하는 언어는 이미 과학기술로 바뀌었지만, 그 비극을 통제할 수 있는 최종 책임은 결국 인간에게 남아 있다. 기술의 진보가 살상의 효율만을 높이는 데 기여하지 않도록, '알고리즘의 전쟁'을 감시할 인류의 지혜와 책임감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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