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산 터빈 의존하던 日…'바람'도 멈췄다[풍력발전 독립의 길을 묻다]③

미쓰비시, 작년 8월 해상풍력 사업 포기 '쇼크'
건설비 상승…국산 터빈 부재가 근본 원인
시장 부재로 日 터빈 기업들 줄줄이 사업 철수
'해상 풍력 선진국' 대만, 자체 공급망은 허약

일본 해상풍력단지 전경. 출처: 픽사베이

일본 해상풍력단지 전경. 출처: 픽사베이

지난해 8월, 일본 미쓰비시가 해상풍력 발전 경매에서 낙찰받았던 1.7기가와트(GW) 규모 3개 프로젝트에서 전격 철수했다. 일본이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2021년 처음 실시한 해상풍력 입찰의 첫 사업이 좌초된 것이다. 현지 언론은 이를 '미쓰비시 쇼크'라 불렀다.


일본은 2030년까지 해상풍력을 10GW로 늘릴 계획이었지만, 2026년 3월 기준 설치 용량은 0.5GW에 불과하다. 한국 역시 2030년 14.3GW 보급을 내걸고도 현재 0.3GW 수준에 머물러 있어, 일본의 좌초가 남의 일이 아니다.

미쓰비시가 사업을 포기한 표면적 이유는 건설비 상승이었다. 하지만 본질은 따로 있었다. 터빈 등 핵심 기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 탓이다.


미쓰비시는 낙찰을 위해 저가 수주에 나섰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인플레이션과 엔저로 수입 단가가 치솟았다. 풍력터빈을 공급하기로 했던 GE버노바가 두 손을 들었고, 다른 해외 터빈 기업들도 모두 고개를 저었다. 한국 두산에너빌리티에도 공급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무산됐다.


니혼게이자이는 "유럽과 달리 터빈을 국내 생산할 수 없는 일본의 비용 대응력은 생각보다 약했다"고 분석했다. 일본이 두산의 문까지 두드린 것은, 아시아에서 자체 터빈 기술을 가진 기업이 그만큼 희소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일본 안에서는 풍력 공급망 부재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번 무너진 공급망을 단기간에 되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이 지금 들여다봐야 할 지점이다.


일본 재생에너지재단과 에기르 인사이트가 이달 공동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 일본의 해상풍력 설치 비용은 ㎿당 371만유로(약 67억원)로 유럽(322만유로·약 55억원)보다 21%가량 비쌀 것으로 전망됐다. 비용 상승의 가장 큰 요인은 단연 '터빈'이었다.


터빈은 해상풍력 투자비의 약 30%를 차지한다. 유럽은 베스타스(덴마크), 지멘스(독일)에 이어 미국 GE가 진입하며 가격 경쟁이 붙었고, 이는 유럽 해상풍력 시장 확대를 이끌었다. 반면 일본은 터빈을 해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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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처음부터 자체 터빈 기업이 없었던 건 아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1980년대부터 풍력발전기를 개발해 2000년대 2.5GW 제품까지 생산했지만, 2008년 GE와의 특허 소송을 거치며 사업에서 손을 뗐다. 이후 2014년 덴마크 베스타스와 합작법인을 세웠으나 2020년 지분을 모두 넘겼다.


히타치는 5GW 터빈 개발에 성공하고도 유럽과의 비용 경쟁에 밀려 2019년 철수했고, 같은 해 일본제강소도 사업을 접었다. 복잡한 인허가 등으로 국내 시장이 제때 열리지 않은 사이, 자국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진 것이다. 한국 해상풍력 역시 인허가 지연이 고질적 병목으로 지적돼 온 만큼, 일본의 전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2020년대 들어 일본이 뒤늦게 재생에너지 확대에 나섰을 때는 이미 늦었다. 해외 터빈사들은 태풍·지진에 맞춘 모델을 새로 개발해야 했고, 그만큼 단가가 껑충 뛰었다. 대안이 없는 일본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시아 또 다른 사례인 대만도 사정은 비슷하다. 올해 3월 기준 대만의 해상풍력 설비는 4.5GW로 중국에 이어 아시아 2위지만, 자체 터빈이 없어 지멘스 등 해외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한때 국산화규정(LCR)으로 자국 공급망을 키우려 했으나 EU의 WTO 제소로 2024년 폐지됐다. 지금은 타워, 하부구조물 등 부대설비(BOP) 중심으로 국산화를 지원한다. 일부 하부구조물 업체는 자리를 잡았지만, 대다수 중소기업은 단순 조립과 저부가가치 부품에 머물러 있다.


이기학 두산에너빌리티 풍력기술개발팀장은 "터빈은 모든 연구개발(R&D)의 시작"이라며 "터빈이 없으면 설계와 엔지니어 역량을 키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이상일 군산대 풍력공학부 교수는 "발전기, 증속기, 블레이드 등 핵심 기자재를 외산에 의존하다 보니 대만 내에서도 '막대한 자금을 들여 풍력단지를 조성했는데 정작 대만에 득이 되는 건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말했다. 한국도 자체 공급망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일본·대만이 겪은 비용 상승을 피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강희종 에너지 스페셜리스트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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