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식의 시장과 경제]수술대 韓경제…신현송號, 왜곡된 물가지표·소통구조 집도하라

뒤틀린 물가지표…구조적 결함 바로잡아야
CPI 반영 주거 비중 축소 '기형적'
물가안정 명분 저금리, 부동산 괴물 키워
금통위, 국민과 소통하는 기구로 거듭나야
제한된 소통에 정책 이해 부족·불신 초래해
국민 경제방향 설명하는 '공적해설자' 돼야

지난 21일 세계적인 거시경제 '석학'으로 불리는 신현송 박사가 우리나라의 제28대 한국은행 총재로 공식 취임했다. 대한민국의 금리와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 의장도 겸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금융안정성과 거시건전성 정책의 중요성을 설파하며 국제 사회의 경제정책 패러다임을 바꾼 인물이 대한민국의 통화 수장으로 자리했다는 사실은 시장에 깊은 안도감과 기대감을 안겨주고 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그러나 신임 총재가 마주한 대한민국의 거시경제 명세서는 결코 녹록지 않다. 필자는 평소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거대한 댐의 수문을 여닫는 행위'로 비유해왔다. 금리를 인하해 방류된 '유동성'이라는 물길은 메마른 '실물경제', 즉 생산과 내수소비라는 논밭으로 스며들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나라의 통화정책은 이 기본적인 메커니즘에서 철저히 실패했다. 수문은 열렸지만 물길은 왜곡됐고 유동성은 생산과 소비가 아닌, 부동산시장으로 집중적으로 흘러 들어갔다. 필자는 2024년 9월30일, '금리 인하, 재앙이 될 가능성 높다' 제하의 본지 기고에서 '유동성 확대 경제무용론'을 강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달부터 불과 8개월간 기준금리는 3.5%에서 2.5%로 낮아졌고 당시의 우려는 현재의 결과로 나타났다.

오랜 기간 금통위의 판단이 누적되어 만들어진 '기형적 부동산시장'과 한계치에 도달한 '가계부채'는 이미 웬만한 처방으론 치유하기 어려운 만성질환이 되어버렸다. 가계부채의 폭증과 주거비 상승은 유효수요. 즉, 내수 기반의 약화로 이어졌고 국민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대수술이 필요하다. 다만 이 수술은 전신마취 없이 진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 난도가 더욱 높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필자는 신임 총재에게 두 가지 개혁을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물가지표의 구조적 결함을 바로잡아야 한다. 왜 금통위의 금리 결정 시스템은 수십 년간 급등하는 부동산 가격 앞에서도 '물가 안정'이라는 착시 속에 머물러 있었을까. 그 근본 원인은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반영되는 주거비 비중이 지나치게 낮다는 '통계지표의 왜곡'에 있었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자가주거비(OER·Owner's Equivalent Rent)를 포함한 주거비 비중이 물가지수의 30%를 상회한다. 집값과 임대료가 상승하면 이는 곧바로 물가지표에 반영되고 중앙은행은 이를 억제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긴축 정책에 나선다. 체감물가의 주범인 부동산시장과 통화정책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구조다.

반면, 대한민국의 물가지수는 전세와 자가 주거비용의 변동을 지나치게 축소시켜 반영하는 기형적인 '바스켓' 구조를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체감 주거비용이 몇 배로 뛰고 서민들의 가처분 소득이 주거비로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는 동안에도, 한국은행 회의실 탁자 위에 놓인 '공식 물가상승률'은 1~2%대의 안정적인 숫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표의 왜곡이 정책의 왜곡을 낳았고 물가 안정이라는 명분 아래 단행된 저금리 기조는 부동산이라는 괴물을 끝없이 살찌웠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이런 문제가 오랜 기간 지속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에서 뼈를 깎는 자성이나 비판이 제기된 적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이다. 그동안 수많은 위원이 금융통화위원회에 참가해왔건만, 지표의 한계를 인정하고 물가지수 개편을 주도하거나 최소한 부동산 자산 가격 상승을 실질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환산하여 통화정책에 적극 반영하려는 치열한 논쟁의 흔적을 과거 금통위 의사록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초찬회동을 갖고 있다. 2026.04.23 윤동주 기자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초찬회동을 갖고 있다. 2026.04.23 윤동주 기자


둘째로 금통위가 국민과 소통하는 기구로 거듭나야 한다. 현재 금통위는 정책 결정 과정과 개별 위원의 판단이 외부에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덕분에 국민 입장에서 금통위는 '국가 경제를 좌우하는 핵심 기구'라기보다 '가끔 금리만 발표하는 신비로운 조직'에 가깝게 느껴진다. 물론 통화정책의 특성상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제한된 소통은 정책에 대한 이해 부족과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 정책은 결과뿐 아니라 그 과정과 판단의 근거가 함께 설명될 때 비로소 신뢰를 얻는다. 일부에서 제기되는 "금통위가 기득권의 시각만을 반영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 역시 이러한 소통 부족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와도 대조적이다. 이는 흥미롭기도 하다. 위원들이 수시로 연설하고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경제 인식과 정책 판단의 배경을 설명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단기적인 시장 변동성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이제는 금통위도 한 단계 진화할 필요가 있다. 금통위원은 단순히 금리를 결정하는 기술관료가 아니라, 국민 경제의 방향을 설명하는 '공적 해설자'여야 한다. 숫자를 다루는 전문가인 동시에, 그 숫자가 국민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신현송 신임 총재에게 요구되는 변화는 단순한 정책 조정의 수준을 넘어선다. 과거의 한국은행이 걸어온 맹목적 경로 의존성을 철저히 타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정부로부터의 거리두기에만 있지 않다. 낡은 지표로부터의 독립, 경직된 사고로부터의 독립, 그리고 스스로의 오류를 직시하지 못하는 관성으로부터의 독립까지 포함돼야 한다.


국민은 더 이상 결과만을 통보받는 대상이 아니라, 정책의 맥락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주체다. 이제 한국은행은 왜곡된 물가지표 뒤에 숨어 '물가 안정'을 도모하던 과거와 결별하고 주거비를 포함한 실질 인플레이션을 정면으로 반영하여, 자산시장과 실물경제를 함께 고려하는 통화정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동시에 금통위는 중요한 정책이 조용히 결정되고 사후적으로 설명되는 구조를 넘어, 치열한 고민과 판단의 과정이 국민에게 전달되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 수문을 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 물이 어디로 흐르는지를 면밀히 예측함과 동시에 이를 책임 있게 설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서준식의 시장과 경제]수술대 韓경제…신현송號, 왜곡된 물가지표·소통구조 집도하라

서준식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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