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물길을 바꿔라]⑤연체율 2배지만 수익성도 2배…리스크 감수한 美 은행의 ‘고수익 비결’

美, 부동산 담보 비중 21% 불과
재고·매출채권 등 '동산 담보(ABL)' 활발
韓, 중기 대출 68.5%가 부동산에 묶여
담보 없으면 혁신 기술도 소용없어
보증 위주 관행 탈피…현금흐름 읽어야 금융 영토 넓어져

편집자주이재명 정부가 '생산적 금융'으로의 대전환을 선언했다. 부동산에 쏠린 자금의 물길을 첨단·전략 산업으로 돌리는 것이 핵심이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자본 전쟁'으로 확산하면서 미국·중국·일본·유럽 등은 국가 자본과 민간 금융을 결합해 전략 산업에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반면 한국 금융은 여전히 부동산 담보대출 중심의 보수적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매섭다. 자원 배분의 왜곡이 지속되면 기술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이에 정부는 정책금융과 민간금융이 결합한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출범시키며 구조 전환에 시동을 걸었다. 본지는 생산적 금융의 필요성과 민간 금융의 한계, 그리고 나아가야 할 정책적 과제를 짚어본다.

국내 은행의 기업 대출 연체율은 미국 은행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지만 수익성 지표 역시 크게 뒤처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은행들이 매출채권, 재고자산 등 다양한 담보를 활용해 기업의 미래를 보고 대출을 실행하는 반면 국내 은행은 여전히 '안전한' 부동산 담보 중심의 보수적 여신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저위험·저수익 관행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자금 중개 기능을 통해 은행의 수익 기반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돈의 물길을 바꿔라]⑤연체율 2배지만 수익성도 2배…리스크 감수한 美 은행의 ‘고수익 비결’

연체율 낮은 韓 은행, 수익성은 美 은행의 '절반'

27일 금융감독원과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은행의 기업 대출 연체율은 0.59%로 집계됐다. 같은 시점 미국 상업은행의 기업 대출 연체율은 1.34%로 국내 은행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이러한 격차는 장기간 지속되어 왔다. 국내 은행의 기업 대출 연체율은 2023년 말 0.41%, 2024년 말 0.5%였지만 미국 상업은행은 같은 시점 각각 1.02%, 1.27%를 기록했다. 지난 10여년간의 흐름을 살펴봐도 국내 은행은 철저한 리스크 관리로 낮은 연체율을 유지해온 반면 미국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부실 위험을 감수하며 영업해 왔다.


하지만 수익성 지표는 정반대다. 미국 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은 지난해 말 기준 3.3%를 기록했으나, 국내 은행은 1.51%에 그쳤다. 자기자본이익률(ROE) 역시 국내 은행은 7.9% 수준인 반면 미국 은행은 11.8%로 큰 차이를 보였다.

한미 은행 간 수익성 격차에는 내외금리차에 더해 계좌유지 수수료, 자산관리 수수료 같은 비이자 이익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여신 운용 방식의 차이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미국 은행은 일정 수준의 부실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높은 금리를 통해 수익을 확보하는 '리스크 테이킹(Risk-taking)' 영업에 능숙하다. 반면 국내 은행은 담보와 보증을 통해 손실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저위험·저수익' 구조에 안주하고 있다.


美, 부동산 담보 비중 21% 불과… '동산 담보'가 실핏줄

가장 극명한 차이는 중소기업 대출 관행에서 드러난다. 미국 상업은행들은 부동산 외에도 다양한 자산을 담보로 활용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난해 개정해 발간한 분석 보고서 '담보 채널과 은행 신용(The Collateral Channel and Bank Credit)'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미국 중소기업의 부동산 담보 대출 비중은 21%에 불과했다.


대신 미국 은행들은 매출채권 및 재고자산(21%), 포괄근저당(20%), 무담보 신용대출(18%), 기타 고정자산(10%) 등 이른바 '동산담보대출(ABL, Asset-Based Lending)'을 적극 활용한다. 기업의 재고나 매출채권 같은 유동자산의 가치를 정밀하게 평가해 현금 흐름 기반의 자금을 공급하는 구조가 안착한 것이다.

[돈의 물길을 바꿔라]⑤연체율 2배지만 수익성도 2배…리스크 감수한 美 은행의 ‘고수익 비결’

반면 국내 은행은 '부동산 불패' 신화에 기댄 여신 운용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중소기업 대출 657조9000억원 가운데 부동산 담보 대출은 450조4000억원으로 전체의 68.5%에 달했다. 2021년 60.7%였던 부동산 담보 비중은 지난 5년간 꾸준히 상승하며 편중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공적 보증에 대한 의존도도 지나치게 높다. 한국 기업 대출의 약 15%는 보증 대출이며, 이 중 94%가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등 정책 보증에 기반하고 있다. 은행이 스스로 사업성을 평가하기보다 리스크를 공적 기관에 전가하는 구조가 고착화된 셈이다. 강경훈 동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 은행들은 중소기업 금융을 적극적으로 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의식이 매우 강한 반면 국내 은행은 최대한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 이러한 차이가 빚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엔 '신보, 기보' 없다… 은행이 직접 수익원 발굴해야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로 공적 보증기관의 존재 여부가 꼽힌다. 한국은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등 정책 보증 체계가 고도로 발달해 있어 은행이 직접 사업성을 평가할 유인이 낮다. 반면 미국에는 이와 같은 대규모 공적 보증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강 교수는 "미국에는 한국의 신보나 기보, 지역신보처럼 중소기업들을 국가에서 돕기 위해 보증해주는 공적 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은행들이 직접 나서서 대출해서 돈을 적극적으로 벌어야만 한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 외에도 다양한 담보를 평가하는 기술 흐름이 발전했다. 김용진 서강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은 은행 외에도 다양한 모기지 공급자와 금융기관이 존재해 경쟁이 치열하다"며 "은행이 적극적으로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구조도 우리나라와의 차이가 벌어지는 요인"이라고 짚었다.


미국 은행들은 안전한 부동산 대출만을 고수하지 않는 만큼, 금리를 높게 설정한다. 일정 수준의 리스크를 감수하고 수익성을 높이는 영업구조가 고착화되어 있다. 김 교수는 "미국의 경우 주주들이 은행의 수익성이 정체되면 결코 가만히 있지 않는 주주 자본주의 문화가 공고하다"며 "두 나라의 주주 문화가 다소 다르다 보니 서로 다른 영업 관행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러한 담보 중심 구조가 기술력은 있지만 부동산이 없는 혁신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점이다. 기업이 대출을 받기 위해 본업인 기술 투자 대신 부동산 확보에 열을 올리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부실 발생 시에도 은행이 기업 회생 지원보다 담보 회수에만 집중하게 된다.


[돈의 물길을 바꿔라]⑤연체율 2배지만 수익성도 2배…리스크 감수한 美 은행의 ‘고수익 비결’

은행 '리스크' 감수하게 할 제도적 뒷받침 시급

정부는 가계대출을 억제하고 자금을 첨단·전략산업으로 유도하는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부동산 담보 중심 여신 구조가 유지되는 한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기술금융, 창조금융 등 정책이 반복됐지만 구조 변화가 병행되지 않으면 성과를 내지 못했던 전례가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문가들은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동산·채권·지식재산권 등을 포괄적으로 담보 설정할 수 있는 제도 개선, 정책보증 의존도 축소, 은행의 사업성 평가 역량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은행들 또한 기업의 비즈니스모델을 이해하고 미래 성장성과 사업으로 인한 현금흐름을 평가해 이런 평가에 기반해 실질적으로 대출을 제공하는 체계를 촉진해야 한다.


김진성 KB경영연구소 연구원은 "국내 동산채권담보법은 자산 종류별로 개별 담보만 설정하게 되어 있어 감정평가 및 등기 비용 등 부대 비용이 과도하다"며 "자산을 일괄적으로 담보 설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은행의 비용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고 제언했다.


정책 보증 체계의 재설계 필요성도 제기된다. 국내 은행들은 신보 외 기보 등이 직접 심사해 보증서를 발급하고 기업이 은행을 찾아가 대출을 받는 구조여서 은행이 직접 사업성을 심사할 유인이 낮다. 강 교수는 "우리나라는 정책금융들이 주로 보증을 서주는 데 이 비중을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며 "기존 대출 보증 중심에서 탈피해 은행들이 직접 나서도록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어느 정도 성장해 기업 사업성을 평가할 만한 기보증 기업에는 직접 보증서를 발급하고 대출을 실행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업 대출의 부실 위험을 구조적으로 낮춰줄 필요도 있다. 김 교수는 "생산적 금융을 하라고 은행에 강조만 할 일이 아니라 리스크를 지는 것을 싫어하는 은행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며 "회수 시장을 키워 은행이 다양한 기업 대출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부도 이후 채권자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현 구조 개선도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채권자들의 권리가 완전히 충족되지 않았는데도 기존 주주들에게 새로운 회사의 주식이 배정되곤 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미국처럼 채권자 권리가 먼저 보호되는 제도가 정착되어야 은행들이 부동산 담보의 의존도를 낮추고 사업성 기반 대출을 확대할 여지가 커진다"고 했다. 이어 "은행 역시 기존의 저위험 저수익 관행으로 편하게만 영업하려는 관행을 탈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은주 기자 golde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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