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란'은 송해성 감독이 2001년에 만든 영화로, 배우 최민식씨가 삼류 건달 '강재'를, 배우 장백지씨가 중국에서 온 여성 '파이란'을 연기했다. 영화 속 파이란은 법적으로는 한국 사회 안에 존재하지만, 실제 삶은 누구와도 충분히 연결되지 못한다. 서류상으로는 누군가의 아내이고 제도 안에서 주어진 이름이 있지만, 일상은 외롭고 가난하며 거의 보이지 않는 존재다. 그녀가 남긴 편지는 뒤늦게 강재의 마음을 흔든다. 한 사람의 존재를 너무 늦게 알아본 데서 오는 회한. 그것이 이 영화가 남기는 오랜 여운이다.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 이 영화가 다시 떠오르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전혀 다른 차원에서 비슷한 질문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노동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외국인 노동자는 더 이상 예외적 보완 인력이 아닌, 지역 산업과 생활경제를 유지하는 중요한 축이 되고 있다.
정부 정책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고용허가제, 계절근로제, 지역특화형 비자 등 외국인 인력 유입을 확대하려는 정책들이 계속 논의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기업의 인력난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가 아니다. 인구구조의 변화 속에서 우리 경제가 필요한 생산 기반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다. 특히 지방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이 산업 유지, 지역 상권, 학교와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과도 직결된다.
근본적 질문은 '외국인 노동자를 부족한 인력을 메우는 수단으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함께 살아갈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있다. 노동은 경제학적으로 생산요소지만, 현실의 노동자는 숫자가 아니다. 그들에게도 권리와 가족,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다. 따라서 정책은 외국인 노동자를 "얼마나 데려올 것인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일정 기간 성실히 일하고 생활한 이들에게는 장기 체류와 지역 정착의 경로를 열고 한국어 교육, 의료·주거 접근성, 자녀 교육 지원을 노동정책의 일부로 다뤄져야 한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이들을 행정의 주변 대상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 인구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숙련은 시간이 지나며 축적된다. 그러나 제도가 외국인 노동자를 계속 임시적 인력으로만 취급하면, 숙련의 축적과 현장의 안정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반복적인 인력 교체는 기업의 비용을 높이고 지역 경제의 지속 가능성도 약화시킨다. 외국인 노동자의 권리 보호와 정착 지원은 단순한 온정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생산성, 노동시장 안정, 지역경제 유지와 직결된 경제정책의 일부다.
물론 외국인 노동자 확대에 대한 우려도 있다. 임금 경쟁, 문화적 차이, 지역사회 갈등에 대한 걱정은 가볍게 볼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외국인을 사회의 바깥에 두는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불안정한 체류, 제한된 정보 접근, 열악한 주거와 노동조건이 갈등을 키울 수 있다. 제도 안에서 권리와 책임을 분명히 하고 지역사회 안에서 접촉과 이해의 기회를 늘리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응이다. 진정한 국제화는 외국인을 많이 받아들이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들을 필요의 수단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인정하는 사회의 역량이다.
영화 '파이란'이 남긴 진정한 슬픔은 관계의 부재가 아니라, 그 관계가 삶을 바꿀 힘으로 작동하기에는 알아차린 순간이 너무 늦었다는 데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 여운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구 감소 시대의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더 이상 주변적 의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 성장 정책이자 지역경제 생존 정책이며,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가 어떤 삶의 공동체가 될 것인가에 관한 질문이다.
김규일 미국 미시간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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