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 퇴행성 뇌질환인 소뇌실조증을 악화시키는 새로운 염증 유발 경로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규명됐다. 혈액 속 단백질이 뇌로 유입돼 염증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난치성 뇌질환 치료의 새로운 접근법이 제시됐다는 평가다.
한국연구재단은 김상룡 경북대학교 교수 연구팀이 한국화학연구원, 한국뇌연구원과 공동으로 소뇌실조증 환자와 동물 모델에서 혈액 유래 단백질이 소뇌에 축적돼 신경염증과 세포 손상을 유도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27일 밝혔다.
척수소뇌실조증 2형(SCA2) 소뇌에서 뇌혈관장벽 손상에 따른 혈액 유래 단백질 축적과 병리 변화. 소뇌실조증 환자와 동물 모델에서 혈액 단백질이 증가하고, 뇌혈관장벽이 무너지며 해당 단백질이 소뇌에 축적되는 현상이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염증 반응과 신경세포 손상, 운동 기능 저하가 나타났다. 연구진은 카페인과 항응고제 리바록사반을 통해 이러한 병리 변화를 완화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림 및 설명 : 김상룡 경북대 교수
소뇌실조증은 소뇌 기능 이상으로 균형 감각 상실, 보행 장애, 발음 이상 등을 유발하는 대표적 퇴행성 뇌질환이다. 특히 유전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척수소뇌실조증 2형'은 질병 진행을 억제할 근본 치료법이 거의 없는 상태다.
연구팀은 기존의 유전자 중심 접근에서 벗어나 '뇌혈관장벽' 손상에 주목했다. 뇌혈관장벽은 혈액 속 물질이 뇌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는 보호막 역할을 하는데, 이 장벽이 무너지면 외부 물질이 뇌로 유입될 수 있다.
실제 환자 혈액 분석에서 혈액 응고 관련 단백질인 트롬빈과 프로트롬빈 크링글-2(pKr-2)가 증가한 것이 확인됐다. 이어 동물 모델 실험에서는 뇌혈관장벽이 손상되면서 이 단백질들이 소뇌로 유입돼 축적되고, 미세아교세포를 활성화해 신경염증과 신경세포 손상을 유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치료 가능성도 함께 제시했다. 카페인을 투여해 뇌혈관장벽 기능을 강화하거나, 항응고제인 리바록사반을 사용해 해당 단백질 생성을 억제했을 때 신경염증과 운동 장애가 유의미하게 완화됐다.
반대로 해당 단백질을 인위적으로 증가시키자 염증과 신경 손상이 악화되는 결과도 확인됐다. 이는 혈액 유래 단백질 축적이 질환 진행의 핵심 요인임을 보여주는 결과다.
연구를 이끈 김상룡 교수는 "소뇌실조증이 단순한 유전적 이상이 아니라 뇌혈관장벽 손상과 혈액 단백질 축적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확인했다"며 "조기 진단 바이오마커와 예방적 치료 전략 개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 지원으로 수행됐으며, 면역학·신경과학 분야 국제학술지인 '저널 오브 뉴로인플라메이션(Journal of Neuroinflammation)에 지난 16일 게재됐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