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정부라면 내부에서 국정 방향을 두고 여러 견해가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 외교·안보와 통상 사안일수록 더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다. 국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열한 토론과 숙의를 통해 밖으로 나오는 말은 치밀한 전략의 결과물이어야 한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북한 평안북도 구성시(市) 핵시설 발언이 일파만파다. 정 장관의 3월 초 발언을 두고 미국이 위성·정찰기·감청 등을 통해 확보한 정보 공유를 일부 중단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전해지면서 사안은 정쟁의 한복판까지 밀려왔다.
당사자인 정 장관은 '구성 핵시설'과 관련해 이미 논문과 언론 보도, 연구기관 자료 등에 여러 차례 나온 공개 정보라며 이를 문제 삼는 것은 억지라는 입장이다. 기밀누설 책임론에 대해서도 정략적 공세라며 "미국이나 우리 내부에서 문제를 유발했다"고 반박했다. 이에 인도·베트남 순방 중 이재명 대통령은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미사여구 없이 "정 장관이 미국이 알려준 기밀을 누설했다는 전제는 잘못"이라며 힘을 실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고 명료했다.
그러나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베트남 현지에서 기자들을 만나 한 말은 다른 뉘앙스를 풍겼다. 그는 정 장관의 발언과 관련해 "미국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유출한 게 아니라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고 전하면서도, 북한 핵시설 정보는 "원래 비밀"이고 한미가 공유한 "연합 비밀"이라고 했다.
불편한 기색도 내비쳤다. 위 실장은 한미 동맹을 '정원(garden)' 가꾸기에 비유하며 '기밀'이 아닌 공개된 정보였다는 취지의 정 장관의 주장과 정부의 입장을 줄곧 제삼자적 언어로 전달했다. 그러면서 "한미 간 약간의 인식 차"가 있고, 결과적으로 "사달이 난 것"이며, 이를 푸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정 장관의 발언으로 한미 동맹 관리에 부담이 커졌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연합뉴스
국내에서 대형 사고를 치고 적반하장식 대응을 이어가고 있는 '쿠팡'의 문제를 두고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위 실장은 일개 기업의 문제라면서도 한미 안보 협의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 때문에 "협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김용범 정책실장이 온라인플랫폼법과 쿠팡 사태가 통상 현안과 직접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관세와 한미 통상 문제를 풀어가겠다고 거리를 두고자 했던 행보와 결이 달랐다. 이는 그간 정부 안에서 해당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충돌하고 있었다는 인상을 줬다.
정가와 외교가 일각에선 한미 간 외교·안보·통상·남북 문제를 두고 정부 핵심 관계자들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감정의 골이 실제로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공개된 발언만 놓고 보면 머리를 맞대고 메시지를 다듬는 과정 없이 각자의 입장이 충돌하고 있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민은 특정 부처 수장과 청와대 참모의 말을 정부 전체의 목소리로 듣기 마련이다. 시장과 기업, 외교적 협상 상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정부 핵심 관계자들은 메시지 혼선과 국정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극도로 애쓴다. 이를 방치하면 당장 대통령의 판단과 국정 운영에도 부담이 된다.
이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여러 차례 당부했듯, 정부 안에서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는 것은 국민에게 이롭다. 숙의를 거쳐 최적의 결과물을 내달라는 국정 최고 책임자의 당부이기도 하다. 국정을 담당하는 각 영역의 책임자들이 각자의 논리에 갇혀 있다면, 최적의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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