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량이 언제 풀릴지 모르니까 입고 알림만 켜놓고 기다릴 수밖에요."
서울 서초구 한 내과 간호사 A씨는 진료 시간 틈틈이 의료용품 쇼핑몰을 확인하는 게 중요한 일과가 됐다. 그는 "예전에는 필요한 만큼 주사기를 구매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규격당 2~3박스로 구매가 제한돼 있다"며 "가격도 1박스당 7000원 하던 게 3배 넘게 뛰었다"고 토로했다.
서울 중랑구의 한 내과 진료실에 일회용 주사기 박스가 놓여 있다. 박재현 기자
중동전쟁 여파로 플라스틱의 원료인 나프타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필수 의료 소모품인 주사기 수급까지 불안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매점매석 행위를 단속하고 있지만, 일부 도매상의 출고 조절 등으로 유통망 확보가 어려운 동네 병·의원부터 물량 부족을 겪고 있다.
27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 23일 오후 5시 기준 주사기 당일 출고량은 558만개, 재고량은 4638만개 수준으로 집계됐다. 식약처는 지난 15일부터 매일 오후 5시 주사기 일일 수급 동향을 발표하고 있다. 생산량도 늘려 혈액 투석 의원, 소아청소년과 등에 우선 공급 중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유통망 확보가 어려워 온라인 구매 의존도가 높은 중소형 병·의원에선 여전히 물량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경기 화성시 한 소아청소년과 간호사 B씨는 "한 달 치 물량은 확보해둬서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 송파구 소재 내과 관계자도 "기존에는 도매업체를 통해 주사기를 구매했는데 한 달 전쯤부터 공급량이 줄었다고 들었다"며 "여러 박스씩 구매할 수 없게 돼 최근에는 겨우 1박스씩 사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오전까지도 일부 온라인몰에선 주사기가 여전히 품절 상태다. 제품이 소량씩 입고되기도 하지만 구매 수량이 대체로 제한돼 있다. 의료용품 쇼핑몰 등에서는 '중동 분쟁으로 인해 일부 품목의 단가 인상과 품절이 이어질 수 있다'고 안내됐다. 공급되는 물량은 적고 가격은 오르다 보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입고 소식이 뜨면 곧바로 품절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식약처는 지난 24일 매점매석 등 불법행위를 저지른 업체 32곳을 적발하는 등 특별단속을 진행 중이지만 일선 병·의원 현장에선 주사기 부족이 해소되지 않고 있어 문제다. 이에 대한내과의사회는 최근 입장문을 통해 "국내 생산 기반 확충과 필수 의료 소모품에 대한 국가 비축 제도 등 중장기적 대책 없이 수행되는 단순 모니터링은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 24일 오후 9시 기준 한 의료 소모품 전문 온라인몰에 주사기 제품에 모두 품절 안내가 떠 있다. 온라인몰 캡처
의료계와 의료용품 업계에선 유통 과정의 문제를 지적한다. 나프타 등 원료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일부 도매상이 주사기 물량을 창고에 쌓아두는 홀딩(출고 조절) 행위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제조업체와 판매업체로부터 매일 보고받는 생산량·판매량·재고량 자료와 판매처 간 유통 경로를 분석해 지속적으로 단속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필수 의료 소모품에 대한 국가 차원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의료물품의 상당수를 수입하고 있는데 실제 필수 의료 소모품의 유통량이 어느 정도인지, 어떻게 생산되고 있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데이터가 부족하다"며 "백신 외에도 주사기 등 소모품에 대해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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