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변이 동시 식별…유전자 가위 '속도 조절'로 해결

바이러스와 변이를 동시에 식별할 수 있는 진단기술이 나왔다. 유전자 가위의 속도를 조절하는 게 핵심이다. 신종 감염병이 속속 등장하고, 확산 속도가 빨라지는 최근의 상황을 고려할 때 다양한 바이러스와 변이를 신속하게 식별할 수 있는 이점은 감염병 대응에 긍정적 요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KAIST 손성민 교수와 (상단 왼쪽부터) UC Berkeley 다니엘 플래쳐(Dan Fletcher) 교수, Gladstone Institutes 멜라니 오트(Melanie Ott) 교수. KAIST

KAIST 손성민 교수와 (상단 왼쪽부터) UC Berkeley 다니엘 플래쳐(Dan Fletcher) 교수, Gladstone Institutes 멜라니 오트(Melanie Ott) 교수. KAIST


KAIST는 바이오 및 뇌공학과 손성민 교수 연구팀과 미국 UC 버클리(UC Berkeley), 글래드스톤 연구소(Gladstone Institutes) 연구팀이 유전자 가위의 반응 속도를 조절해 복수의 바이러스와 변이를 동시에 구별할 수 있는 새로운 리보핵산(RNA) 진단기술을 개발했다고 26일 밝혔다.

공동연구팀이 개발한 진단기술에는 'Cas13' 유전자 가위 단백질이 활용됐다. 유전자 가위는 특정 유전자를 찾아 잘라내는 단백질로, 목표를 인식했을 때 활성화되는 특징이 있다. 특히 Cas13은 RNA를 표적으로 하며, 목표 RNA를 찾으면 주변 RNA를 자르면서 형광 신호를 발생시킨다.


기존 기술은 여러 바이러스를 동시에 검출하기 위해 서로 다른 유전자 가위 또는 다양한 색의 형광 물질을 사용해야 하는 탓에 구조가 복잡하고, 현장에 실적용이 어려웠다.


이에 착안한 공동연구팀은 유전자 가위가 목표물과 결합할 때 바이러스 종류에 따라 '가위질'하는 속도가 제각각인 점에 주목했다. 일반적 현상을 토대로 발상을 전환해 문제의 실마리를 찾은 셈이다.

공동연구팀은 아주 작은 물방울(droplet) 안에서 단일 분자 단위를 관찰했을 때 가이드 RNA와 표적 RNA의 조합에 따라 고유한 반응 속도 패턴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가이드 RNA는 유전자 가위가 어떤 목표를 찾을지 안내하는 '위치 정보' 역할의 RNA 분자다.


이를 토대로 반응 속도 차이를 바코드처럼 활용하는 '키네틱 바코딩(kinetic barcoding)' 기술도 개발했다. 이는 반응 속도를 일종의 신호 패턴으로 읽어 서로 다른 바이러스를 구별하는 방식이다. 이 기술은 하나의 유전자 가위로도 여러 바이러스와 변이를 동시에 구별할 수 있게 한다.


또 가이드 RNA 설계를 조정하면 유전자 가위질 속도를 원하는 방향대로 조절할 수 있어 이론적으로 매우 다양한 바이러스도 동시에 판별할 수 있는 확장성을 확보했다고 공동연구팀은 강조했다.


바이러스·변이 동시 식별…유전자 가위 '속도 조절'로 해결

검사 과정을 대폭 단순화한 것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기존에는 RNA 바이러스를 검출할 때 DNA로 변환하는 '역전사(reverse transcription)' 과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새로운 진단기술은 RNA를 원상태에서 직접 검출할 수 있다. 역전사는 RNA를 DNA로 바꾸는 과정으로 검사 시간이 길어지고, 절차가 복잡해지는 요인이 된다.


공동연구팀이 개발한 진단기술은 임상 샘플 테스트에서 다양한 호흡기 바이러스와 SARS-CoV-2 변이를 단번에 정확하게 구분하는 결과를 보였다.


손 교수는 "이번 연구는 단순히 바이러스의 유무를 확인하는 것을 넘어 유전자 가위의 반응 속도라는 새로운 정보를 진단에 활용한 첫 사례"라며 "새로운 진단기술이 현장에서 단번에 다양한 신종 감염병을 식별·진단하는 차세대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에는 손 교수가 제1 저자 및 공동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지난달 31일 바이오공학 분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Nature Biomedical Engineering)'에 게재됐다.





대전=정일웅 기자 jiw3061@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