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만섭의 딥러닝]'쉬었음' 255만…AI시대 일자리 대책도 쉬고 있나

코딩·추론 넘어 피지컬 AI까지
"2030년부터 전방위 업무 담당"
부동산에 밀린 청년 고용 이슈
노동시간 단축 등 해법 찾아야

최근 등장한 인공지능(AI)들은 텍스트·이미지·영상의 생성을 넘어 코딩과 분석, 추론까지 한다. 법률·회계 같은 전문 직종에서도 복합적 판단이 필요한 직무를 지원한다. 신체를 얻어 직접 움직이고 작업하는 '피지컬 AI'는 공장 자동화와 생산성 혁신을 이끈다. AI용 메모리 반도체를 만드는 SK하이닉스·삼성전자의 주가는 급등한다. 이들로 봤을 때, 우리는 4차 산업혁명기에 이미 들어섰는지도 모르겠다.


1932년 작품 '마천루 위에서의 점심'을 AI 생성 이미지로 변환

1932년 작품 '마천루 위에서의 점심'을 AI 생성 이미지로 변환


현대사회의 요체는 '지능화'이고 그 중심은 AI일 수밖에 없다. AI는 무엇보다 경제 영역에서 그 영향력이 크다. 많은 사람이 AI의 편익에 주목하지만, 부작용이 없지는 않다. AI로 파생될 문제로는 단연 '일자리 감소'가 지목된다. AI 기반의 자동화로 일자리가 줄어들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심지어 이는 현실이 되고 있다. 2016년 다보스포럼은 AI 혁명으로 선진국에서 710만개 일자리가 사라지고 200만개 혁신형 직업이 생겨, 궁극적으로는 510만개 일자리가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예측은 이후 AI발 일자리 급감의 핵심 근거가 돼 왔다. 지난 1년간 보도된 54개 국내 매체의 관련 기사 22만6189건을 분석한 결과, AI와 일자리의 상관성은 '강함(최대 1.0 중 0.88)'을 나타냈다. AI를 일자리 문제와 연관 짓는 것이 하나의 보도 관례가 됐음을 시사한다.

공학자와 경제학자들도 AI가 일으킬 가능성이 큰 사회문제로 '실업대란'을 꼽는다. AI가 사람이 필요 없는 산업 생태계를 형성해 구조적으로 일자리를 잠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생애자원관리연구소'는 노동자 없는 공장, 요리사 없는 식당, 심판 없는 스포츠 경기, 샐러리맨 없는 사무실, 기자 없는 신문사, 의사 없는 병원, 법조인 없는 재판정이 등장할 수 있다고 점쳤다. 이미 시중의 많은 패스트푸드점에선 키오스크 기계가 주문받으면서 점원을 대체하고 있다.


물론 AI가 일자리를 줄이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캐나다의 AI 및 로봇공학 연구자인 한스 모라벡이 제시한 역설(모라벡의 역설)은 "사람에게 쉬운 일이 로봇에는 어렵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에 따르면 인간과 AI 간 협력이 순조로워지고 일자리도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 총량 불변의 법칙'도 "산업혁명으로 사라지는 일자리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나타난다"고 했다.


그러나 지능화 시대의, 극도로 효율적인 AI 앞에서도 이 역설과 법칙이 유효할지는 확신할 수 없다. '엄효진 연구팀'에 따르면, 약한 AI는 인간의 반복적인 작업을 대체하고 강한 AI는 능동적이고 고차원적인 업무영역까지 맡게 된다. 지금은 AI에 의한 일자리 감소를 심각한 문제로 여기고 대비해야 할 때다. 실제로 위기는 이미 시작된 것도 같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비경제활동인구 중 '쉬었음' 인구는 255만5000명으로 2003년 통계 시작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허만섭의 딥러닝]'쉬었음' 255만…AI시대 일자리 대책도 쉬고 있나
[허만섭의 딥러닝]'쉬었음' 255만…AI시대 일자리 대책도 쉬고 있나

특히 청년실업이 심각하다.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20대 중후반 '쉬었음 청년'은 20년 사이 2.6배 늘었다(한국경영자총연합회 4월20일 보고서). 지난 2월 25~29세 취업자는 234만6000명으로 9년 만에 가장 적다. 주된 원인으로는 경력직 채용 증가, 전문 서비스업 채용 감소, 정년 60세 의무화, 저성장 고착화에 따른 고용 창출력 저하, 그리고 청년층의 대기업 선호가 꼽힌다. 이 가운데 경력직 채용 증가와 전문서비스업 채용 감소엔 AI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회사 업무를 파악한 5~10년 차 중견 사원이나 전문직 종사자 중 상당수는 AI 활용 역량을 갖춰 신입사원 여러 명 몫의 일까지 처리한다. 이들과 '직무 경험 없는 취업준비생' 간 생산효율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나아가 AI는 이들 중간관리자의 자리까지 재편할 조짐이다. '매킨지 보고서'는 "2030년부터 AI가 기업의 상품개발·생산·마케팅·금융·법무·인사·연구개발(R&D)·소프트웨어 업무에 전방위적으로 개입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금도 일자리가 줄어 난리인데, 2030년 이 '특이점'이 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려스럽다.


대학 교육을 받은 성인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대개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다. 일할 의지가 있음에도 무직으로 사는 건 큰 고통이다. 많은 취준생들은 입시지옥을 이겨내고 대학 내내 어학성적에 학점, 스펙을 쌓지만 번번이 취업 문턱을 넘지 못한다. 취업 적정기가 지나면 그나마 있던 좁은 문마저 닫힌다.


정부는 고용 증대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해 왔다. 그러나 고용 문제가 부동산 이슈만큼 강한 국가적 의제로 두드러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엑스(X·옛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을 활발히 해, 사회적 의제를 뜨겁게 달구는 행보를 많이 보였다. 최근에도 부동산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 폐지 관련 게시물을 대서특필했다. 반면 최근 1년 동안 이 대통령의 엑스 게시물을 다룬 보도에서 일자리는 부동산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빅카인즈 분석).


일자리는 일차적으로 구직자 개인이 더 노력해야 할 문제다. AI나 소프트웨어를 만들지는 못해도 그 기능을 전공 실무에 충분히 활용할 수는 있어야 한다. 대기업이 경력직을 선호한다면, 마냥 대기업만 노릴 게 아니라 경력을 쌓아 단계적으로 올라가는 방법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만, 이를 개인에게 일임하기에는 일자리난이 너무 구조적이고 국가의 책임이 크다는 점도 간과하기 힘들다.


이 대통령은 "동일한 조건이라면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의 보수가 더 높아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라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이는 경직된 노동시장이 청년 일자리를 틀어막는 구조를 개혁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등이 기업의 고용 창출력에 미칠 영향도 함께 점검할 필요가 있다. AI 정책도, 그 이름이 '소버린 AI'이든 무엇이든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담겨야 한다. AI 전환이 불러올 청년고용의 충격에 비하면 지금의 정책에서 맞춤형 대응은 아직 선명하지 않아 보인다.


AI의 효율로 이익이 늘 때 이를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시작할 때가 됐다. 삼성전자 노조가 조원 단위의 성과급을 요구하고 나선 건 이를 촉진시킬 수 있다. 'AI·반도체가 사회경제를 장악할 수준이라면, 그 성과가 해당 기업·노조에만 돌아가서야 하겠는가?'라는 주장도 나올 수 있겠다.


앞으로 직원 5명이 하던 일을 직원 1명이 하고 AI가 대신할지도 모른다. 냉정하게 따져,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는 남는 직원 4명을 해고하는 것이다. 'AI 디스토피아'다. 둘째는 직원 5명을 계속 고용하면서 노동시간을 줄여주는 것이다. 이때는 'AI 유토피아'다. 시민과 기업, 정부가 하기 나름이다. 유럽의 '책임감 있는 AI(Responsible AI)' 논의는 "AI가 사람에게 유해해선 안 된다"는 가정 위에 있다. AI의 생산성 혜택은 소수에 편중되지 않아야 하며 일자리를 찾는 다수를 좌절하게 해선 안 된다.


[허만섭의 딥러닝]'쉬었음' 255만…AI시대 일자리 대책도 쉬고 있나

허만섭 강원대 디지털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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