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영화관 모습. 연합뉴스
엔데믹 이후 세계 주요국 극장 대부분이 회복했다. 한국은 여전히 바닥을 맴돈다. 지난해 극장 관객 수는 1억608만8808명. 팬데믹 직전인 2019년 2억2667만8228명의 46% 수준이다. 같은 기간 미국은 62% 회복했고, 유럽 대부분 나라도 75%를 넘겼다. 일본은 2024년 74%에 이어 지난해 100% 회복에 근접했다. 팬데믹은 전 세계가 함께 겪었고, 넷플릭스는 일본과 프랑스에도 있다. 한국만 유독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건 단순한 회복 지연이 아니다.
절댓값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 극장 관객 수는 2013년부터 2019년까지 7년 연속 2억 명을 넘겼다. 그러나 지난해 수치는 20년 전인 2005년(1억2330만701명) 수준에도 못 미친다. 상업영화 개봉 편수도 2019년 100편에서 지난해 서른 편 미만으로 70% 가까이 급감했다. 한국 극장가는 회복이 아닌 붕괴 중이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등 영화단체들은 원인을 산업 구조에서 찾는다.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세 기업은 전체 스크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배급과 제작까지 계열사를 통해 겸한다. 미국은 1948년 파라마운트 판결로 이 같은 수직 결합을 70년 이상 금지해왔다. 2020년 동의 명령이 종료됐지만, 그 긴 분리의 역사가 독립 배급사와 독립 영화관 생태계를 만들었다.
반면 한국은 수직계열화를 허용하고 있으며, 폐해를 20년 가까이 방치했다. 극장이 배급을 겸하면 계열사 영화를 우선 배치하는 유인이 구조적으로 마련된다. 독립 배급사는 상영관 확보에서 밀리고, 중소 제작사는 투자 유치에서 불리해진다.
가장 가시적인 폐해는 '좌석 몰아주기'다. 흥행 상위 영화에 스크린을 집중적으로 배치한다. 관행으로 고착되면서 멀티플렉스는 사실상 블록버스터 전용관이 됐다. 예컨대 '아바타: 불과 재'와 '주토피아 2'는 지난해 12월 17일부터 약 3주간 전체 극장 좌석점유율의 85%를 차지했다. 두 영화에 밀려난 영화들은 일찌감치 종영됐다. 이처럼 스크린에서 사라지는 속도가 빨라지자 관객은 극장 대신 IPTV나 OTT를 찾는다.
수직계열화는 투자 환경도 무너뜨렸다. 극장 체인을 계열사로 둔 대형 배급사들은 상영관 확보라는 유리한 지위를 활용해 투자 유치부터 작품 소싱까지 독점해왔다. 팬데믹으로 이들의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지자 투자금은 씨가 말랐다. 중소 제작사 지원을 목적으로 설계된 모태펀드 자금에 손을 뻗칠 정도다. 지난해 개봉한 한국 상업영화의 총제작비는 전년보다 40% 급감한 3000억~35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최근 발표된 2026년도 모태펀드 영화 계정 공고는 이 흐름을 바꾸기는커녕 고착시켰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출자를 허용하고, 극장 개봉 없이 OTT로 직행하는 영화 투자도 처음으로 허용했다. 중소기업 지원 자금으로 대기업을 돕고, 국내 영화 진흥 자금으로 글로벌 OTT를 돕는 구조가 정책적으로 공식화된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2월 발간한 '영화콘텐츠 소비트렌드 연구'는 소비자가 극장을 기피하는 이유를 담고 있다. 1위는 '관람비 부담(25.1%)', 2위는 '볼만한 영화 부족(21.5%)'이었다. 요금은 올랐고 상영작의 다양성은 줄었다. 관객 이탈을 자초한 두 조건이 동시에 충족됐다. 직장인 김성훈 씨(46)는 "요즘은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며 "스크린을 여섯 개 갖춘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작품이 여섯 편이 안 될 때도 많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스크린 집중 제한 제도로 단일 영화의 좌석 독점을 막는다. 극장부터 무료 TV까지 단계적 유통 구조를 법령으로 규정해 투자금 회수 경로를 보장한다. 일본은 법제화 대신 업계 자율규제로 장기상영 관행을 지킨다. 흥행작에 스크린을 몰아주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문화가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됐다.
서울의 한 영화관의 모습. 연합뉴스
일본도 도호·쇼치쿠·가도카와를 중심으로 제작·배급·상영이 수직계열화돼 있다. 하지만 작동 방식은 한국과 큰 차이가 있다. 단기 흥행 극대화보다 극장이라는 공간의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을 수십 년에 걸쳐 내면화했다. 게다가 일본 극장 티켓 가격은 평균 점심 식사 가격의 2.2~2.5배 수준이다. 한국은 1.3~1.5배에 불과하다. 스크린당 관객이 적어도 수익이 나는 일본과 좌석을 채워야 수익이 나는 한국은 경제적 토대부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20년 가까이 과점과 수직계열화를 방치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병인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장은 "영화산업 지원이 시작된 1997년 이후 30년 가까이 지원 방법이 바뀌지 않았다"며 "급변하는 산업과 시장 환경을 정부가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도 "정부와 대기업이 근본적 해결에 실패해 한국 영화 산업의 위기가 팬데믹 때보다 더 심화했다"며 "많은 영화가 공존하며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이 늪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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