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푸드 코트 유리 진열창 놓인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짜 음식'은 누가,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을까. '음식 샘플'이라고도 불리는 이 모형은 단순한 홍보 소품이 아닌, 당당한 공예로 인정받고 있다.
한 백화점 푸드코트 유리 진열창에 놓인 플라스틱 음식 샘플. 다이닝코드 홈페이지 캡처
휴게실이나 백화점 푸드 코트에서 흔히 음식 샘플을 볼 수 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밥, 국물, 돈가스, 튀김, 떡 등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음식 샘플은 플라스틱 공방에서 제작하며, 국내에도 음식 샘플 제작에 매진해 온 수많은 공방 장인들이 있다. 여러 매체에 소개된 40여년 경력의 음식 샘플 장인 홍경택 두리모형 창업자가 대표적이다.
다만 음식 샘플의 원조는 일본이다. 일본은 1900년대 초부터 이미 밀랍을 비롯한 다양한 재료로 음식 샘플을 만들어 왔으며, 지금은 요리 못지않게 요리 모형도 예술의 일부로 대우받고 있다.
이와사키 다키조 이와사키 제작소 창업자(왼쪽), 그가 처음으로 만든 밀랍 오므라이스. 이와사키 Be-I 홈페이지
세계 최초로 음식 샘플을 상업화한 인물은 일본인 이와사키 다키조. 이와사키는 1932년 오사카시에 일본 최초 식품 모형 공방인 '이와사키 제작소'를 설립했으며, 다양한 음식 샘플을 제조해 식당에 납품한 인물이다. 2013년 현지 매체 조사에 따르면 이와사키 제작소의 일본 음식 샘플 시장 점유율은 약 70%로 과점 수준에 이른다.
일본에선 19세기 후반부터 이미 음식 샘플을 가게 바깥에 내놓는 홍보 전략이 존재했다. 당시에는 진짜 주먹밥, 스시, 떡 등을 내놨지만, 문제는 곡물로 만든 음식 특성상 쉽게 상한다는 것이었다. 이와사키는 상하지 않는 밀랍으로 음식 모형을 만들어 샘플로 쓰자는 묘안을 냈고, 1932년 '밀랍 오므라이스 모형'으로 첫 번째 작품을 내놨다.
일본 음식 전문 매체 '바이푸드'에 따르면, 20세기 초 일본은 막 산업화를 완료한 시기라 도시 인구는 과포화되었지만, 문맹률이 높았다고 한다. 요식업 수요는 높았지만, 글을 읽을 줄 아는 성인은 적어 글자가 빼곡히 적힌 메뉴판을 내놓기 어려웠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한눈에 어떤 요리인지 알아볼 수 있는 이와사키의 밀랍 음식 샘플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음식 샘플 장인들은 플라스틱과 물감만으로 음식 식감, 빛깔까지 재현한다. 이와사키 Be-I 홈페이지
이와사키 제작소는 1950년대에 전문 공장을 설립해 밀랍 샘플을 찍어낼 만큼 대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에는 햇빛에 쉽게 녹는 밀랍 대신 플라스틱으로 샘플을 만드는 관행이 정착했고, 현재는 일본 열도 전국에 수많은 샘플 장인이 난립한 상태다. 일본에는 마치 식자재 마켓처럼 음식 샘플만 전문적으로 파는 상점도 있다. 도쿄 최대의 식자재 상점가인 '갓파바시 도구 거리(かっば橋道具街)'에는 식품 샘플 코너가 따로 마련됐을 정도다.
오늘날 플라스틱 성형 기술은 놀라울 만큼 정밀하게 발전했지만, 음식 샘플 장인 대다수는 여전히 수작업을 고집하고 있다. 고객들이 원하는 음식 모양은 기계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다양하기 때문이다. 요리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고급 일품요리의 경우, 플레이팅과 밥알 모양에까지 주의를 기울여 완벽하게 원본을 재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플라스틱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식품의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수십 년 플라스틱 공예를 연마한 장인들은 길게 늘어지는 찹쌀떡의 질감은 물론, 신선한 양상추나 육즙이 흐르는 햄버거 패티까지 플라스틱과 실리콘 덩어리, 물감만으로 구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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