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학에서 골든타임(Golden Time)은 '사람을 살리는 시간대'를 의미한다. 사람이 아닌 조직에도 골든타임은 있다. 조직의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시간'이 바로 골든타임이다. 농협 개혁의 골든타임은 상반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임기가 끝나는 올해 6월이다. '외부 독립 감사위원회' 설치와 '중앙회장선거 조합원 직선제' 도입을 위해선 농협법 개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제22대 국회 하반기 원 구성에 따라 소관 상임위인 농해수위 소속 의원 상당수가 새 얼굴로 교체되는 경우 법 개정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결국 6월까지 법 개정을 하지 못하면 개혁 추진동력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농협 개혁을 위한 밑그림을 그려왔다. 지난해 11월 '농협 관련 익명제보센터' 운영을 시작으로 변호사·세무사 등 외부전문가 6명을 포함한 총 26명을 투입해 농협중앙회와 농협재단에 대한 특별감사에 나섰다. 이후 농협 소관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에 더해 국무조정실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감사원 등이 참여하는 정부합동 특별감사반을 통해 추가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감사 결과 농협의 각종 비위가 줄줄이 드러났다. 중앙회장은 1박당 250달러(약 36만8000원)인 해외출장 숙박비 규정을 지키지 않았고, 관행처럼 농민신문사 회장을 겸임하며 연간 3억원이 넘는 연봉과 퇴직금(약 4억2000만원)을 챙겨왔다. 또 중앙회는 전국 조합에 대가 없이 지원하는 무이자자금을 조합장이 중앙회 이사로 재임 중인 이사조합 등에 집중적으로 지원했다. 농협재단은 중앙회장 선거를 도운 조합장·조합원·임직원 등에게 총 4억9000만원가량을 뿌리기도 했다.
농협에는 이 같은 비위를 막을 수 있는 감사위원회와 조합감사위원회가 있었지만, 내부통제 체계는 작동하지 않았다. 농협 감사제도가 중앙회장의 비리를 눈감아주고, 지역 조합장의 비위를 적당히 덮어주는 '비리 세탁소'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의 감사는 즉각적인 개혁 성과로 이어졌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문제가 된 해외출장비를 사비로 반환했고, 농민신문사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농협 개혁이 걸음마를 뗀 것이다.
하지만 농축협 조합장들은 지난 9일에서야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개혁 핵심 과제에 반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1일에는 여의도에서 감사 기구 신설안 철회와 중앙회장 조합원 직선제 변경 시도 중단 등을 요구하며 '농협 자율성 수호 농민 결의대회'를 열었다. 96%가 넘는 조합장이 이를 반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설문조사 대상에 조합원은 없었다.
비대위도 "농협개혁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며 개혁의 필요성 자체는 인정하고 있다. 다만 '현장의 의견을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방식'을 문제 삼고 있다. 정부는 이를 고려해 농업인과 조합원, 조합장, 농업인 단체를 대상으로 세 차례 설명회를 진행하기로 했다. 현장 의견을 면밀히 검토해 개혁 입법안을 보완할 방침이다.
농협 개혁의 골든타임은 두달여 밖에 남지 않았다. 이를 놓치면 65년 만의 농협중앙회장 조합원 직선제 등 농협개혁은 허사가 될 수 있다. 농협 개혁에 대한 일부 조합장들의 반대 움직임이 조합장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시간 끌기는 아닌지, 진정 농협과 농민을 위한 것인지 자문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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