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지난달 우리 측 외교안보 당국을 향해 동시다발적으로 항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구성 핵시설' 발언을 한 직후 위성·감청·정찰 등 다양한 정보 제한을 이미 예고한 셈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20일 오후 외부 일정을 마친 뒤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도착, 미국과 정보공유가 일부 제한된 것과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미측의 항의는 마이클 디솜브리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지난달 11일 방한했을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디솜브리 차관보는 외교부 고위당국자와의 협의 과정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언급했다. 정 장관이 지난달 6일 국회에서 북한 우라늄 농축시설 소재지로 기존에 알려진 평안북도 영변, 남포시 강선 외에 '평북 구성'을 언급한 지 5일 만이다.
이어 미 중앙정보국(CIA)도 국가정보원에 위성·감청·정찰 등 다양한 유형의 자산을 통해 얻은 대북 정보를 공유해줬는데 사전협의 없이 노출했다며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시점에 주한미군도 국방부 측에 향후 대북 정보를 차단할 수 있다는 점을 통보했다.
한미간에 갈등의 폭이 좁혀지지 않자 미측은 이달부터 정보를 차단했다. 미국은 정기적으로 한미간에 공유하던 대북 인공위성 정보를 일부 차단했다. 미국은 이전에도 자신들이 제공한 대북 정보를 한국이 임의로 공개하면 심각한 '정보 재산권' 침해로 간주해왔다. 정보당국은 미측이 차단한 정보의 범위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고 있다.
군 안팎에서는 그동안 한국이 미국에 상당 부분 의존해온 대북 정찰·감시 능력이 훼손되고 군사대비태세가 약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북한이 올해 초 9차 당대회 이후 탄도미사일 발사 등 도발의 수위와 빈도를 끌어올리고 있어 우려가 커졌다.
북한은 올해 극초음속 미사일 및 탄도미사일 발사(1월 4일), 개량형 대구경 방사포 시험사격(1월 27일), 600mm 초대형 방사포 사격(3월 14일) 등의 무력 시위를 감행한 바 있다. 이달 들어서는 도발의 간격이 줄어들고 있다. 7일 평양 일대에서 미상의 발사체를, 8일에는 원산 일대에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12일에는 신형 구축함 '최현'호에서 순항미사일과 함대함 미사일을 발사한 데 이어 일주일 만에 다시 도발에 나섰다.
군 관계자는" 미국이 공유를 제한한 정보는 군사적 측면에서 영향을 직접적으로 주는 정보는 아니다"라며 "탄도미사일 발사 등 북한군 동향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한미 간 감시·정찰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미국의 대북 정보 차단 등 반발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0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제3의 북한 핵시설 소재지로 평안북도 구성시를 언급한 일과 관련해 "정 장관의 발언 이전에 구성 핵시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각종 논문과 언론 보도로 이미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 점은 명백한 팩트"라고 두둔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서 이같이 밝히며 "정 장관이 '미국이 알려준 기밀을 누설'했음을 전제한 모든 주장과 행동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미국이 정보공유를 일부 제한하고 이에 야권에서 경질론이 고개를 드는 가운데, 공개된 정보를 언급한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하면서 문제 제기의 '저의'까지 언급한 정 장관의 반박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해석된다.
정동영 장관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자신의 '구성 핵시설' 발언은 이미 공개된 정보였다면서 "북핵 문제의 심각성을 설명하기 위해 정책을 설명한 것인데 이를 정보 유출로 모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며 "한미 간에 원만한 소통을 통해 잘 해결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부 내부에서는 한미간에 충돌은 비무장지대(DMZ) 출입 승인 권한 문제를 놓고 시작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유엔군사령부 측은 "대한민국이 DMZ 출입 승인 권한을 갖는 것은 정전협정에 정면충돌하는 것으로 유엔군 사령관 권한을 과도하게 훼손하는 것(so undermine)"이라고 반발했다. 국방부는 최근 미국 측에 DMZ 공동관리를 제안했지만, 유엔군사령부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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