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촌리 벽돌무덤 전경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벽돌의 광여기루미네선스(OSL) 연대측정을 통해 공주 교촌리 벽돌무덤(교촌리 3호 전실묘)이 무령왕릉보다 먼저 제작됐음을 알아냈다고 21일 밝혔다. OSL 연대측정은 석영이나 장석이 빛에 노출됐을 때 발생하는 신호를 이용해 무기물의 연대를 측정하는 기법이다.
교촌리 벽돌무덤은 벽돌로 내부구조를 방처럼 만들었다. 국내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고분 형태로,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6호분이 여기에 속한다.
이 무덤은 조선 시대에 이미 알려져 있었다. 중종 25년(1530)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공주목조에 "향교의 서쪽에 무덤이 있는데, 백제왕릉이라고 전한다"는 기록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 가루베 지온과 사이토 다다시가 조사했으며, 2018년 공주대 박물관이 발굴에 나서 고분 구조와 축조기법을 확인했다.
광여기루미네선스 연대측정실 전경
교촌리 벽돌무덤은 문양이 없고 비교적 저온에서 소성된 벽돌로 제작됐다. 벽돌 사이 줄눈으로는 점토가 사용됐다. 구체적인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이나 명문은 확인되지 않았다.
반면 무령왕릉과 왕릉원 6호분은 출토된 명문을 통해 중국 남조의 기술적 영향을 받아 제작됐다고 추정된다. 특히 왕릉원 6호분에서 출토된 벽돌 측면의 명문은 '양관와위사의' 또는 '양선이위사의'로 판독된다. 표기된 '양'은 중국 양나라(502∼557년)로 볼 수 있다.
최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가 재조사한 29호분 폐쇄용 벽돌에서도 '조차시건업인야'로 판독되는 명문이 확인됐다. '이것을 만든 사람은 건업인(남경 사람)이다'로 해석돼 당시 남조 기술자들이 벽돌과 무덤 제작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무령왕릉 역시 무덤 폐쇄용 벽돌에 새겨진 '~사임진년작'이라는 명문으로 무령왕의 재위 기간(501∼523년)에 해당하는 임진년(512년) 무렵에 제작됐다고 추측된다. 이 때문에 교촌리 벽돌무덤이 무령왕릉보다 앞선 것인지, 아니면 이후에 백제 기술로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왔다.
교촌리 벽돌무덤 출토 분석대상 벽돌
연구원의 연대측정에서 교촌리 벽돌무덤의 벽돌은 4세기 말 이전에 제작됐다고 나타났다. 교촌리 벽돌무덤이 무령왕릉보다 100년 이상 앞서 제작됐으며, 벽돌로 내부구조를 방처럼 만든 고분 형태가 당시 이 지역에서 처음 제작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연구원은 연대측정의 과학적 분석 방법과 결과 해석을 21∼24일 강릉에서 열리는 '2026년 춘계 지질과학기술 공동학술대회'에서 발표한다. 관계자는 "정밀한 연대측정 연구를 통한 성과를 국민에게 지속해서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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