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힌드의 목소리' 스틸 컷
카메라는 현실의 끔찍한 고통에 어디까지 다가가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 증언해야 할까. '힌드의 목소리'는 이 무겁고도 근원적인 질문을 세계 영화계에 던진 작품이다.
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은 2024년 1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 당시, 빗발치는 총격 속에서 적신월사에 구조를 요청하다 끝내 숨진 여섯 살 팔레스타인 소녀 힌드 라잡의 실화를 다룬다. 영화는 제82회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하지만 수상의 이면에는, 타인의 고통을 스크린에 재현하는 방식과 그 윤리적 경계를 둘러싼 논쟁이 자리한다.
가장 격렬한 지점은 이 영화가 사건 당시의 실제 통화 녹음본을 가공 없이 극의 중심축으로 활용한다는 사실이다. "가족이 모두 죽었어요", "제발 빨리 와주세요" 같은 아이의 절박한 육성은 극장의 어둠 속에서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이는 어떤 정교한 시나리오나 탁월한 연기로도 대체 불가능한 절대적 비극의 증거물이다. 하니야 감독은 무한한 스크롤 속에서 역사적 비극이 빠르게 잊히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대의 병폐에 저항하기 위해, 이 영화를 하나의 거대한 '비석'으로 삼아 라잡의 목소리를 영구히 새기고자 했다.
영화 '힌드의 목소리' 스틸 컷
현실의 고통에서 출발한 픽션이야말로 대중의 뇌리에 사건을 각인시키는 강력한 무기라는 기획 의도는, 관객이 전쟁의 참상을 이성적 판단이 아닌 즉각적 감각으로 체험하게 한다. 그러나 라잡의 실제 음성이 지닌 날것 그대로의 진실은, 이를 극적으로 포장하기 위해 덧붙여진 다큐드라마적 허구와 결합하는 순간 적잖은 미학적 부조화를 일으킨다.
하니야 감독은 구조 센터 내부에서 라잡과 통화하며 절망하고 분노하는 구급대원들의 모습을 배우들의 연기로 재구성한다. 문제는 이 과정이 할리우드 스릴러 문법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긴박함을 인위적으로 쥐어짜 내는 역동적인 카메라 워킹, 감정을 폭발시키는 배우들의 과잉된 연기가 라잡의 실제 음성이 가진 서늘한 엄숙함과 충돌한다. 살아있는 고통의 기록이 배우들의 연기력을 돋보이게 하거나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리기 위한 일종의 '배경음악' 내지는 '효과음'처럼 소비되는 것이다.
관객은 참혹한 현실의 목격자로서 숨을 죽이는 대신, 작위적으로 연출된 구급대원의 표정과 화면 구도에 시선을 빼앗기며 영화적 선택의 타당성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구조 센터 내부 상황을 통제실 스릴러처럼 묘사하고, 폭격 맞은 거리를 위성 지도로 살피며 구급차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장면들은 서스펜스를 유발하기에는 적합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장르적 쾌감의 차용은 진실을 증언하겠다는 애초의 엄숙한 목적을 스스로 훼손하는 결과를 낳기 쉽다. 절제되어야 할 비극의 재현이 과도한 영화적 야심과 만나면서, 참상이 스펙터클로 변질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힌드의 목소리' 스틸 컷
더 큰 문제는 윤리적 딜레마다. '힌드의 목소리'는 관객이 상황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구조적 모순을 성찰할 지적 여백을 철저히 차단한다. 대신 아이의 처절한 비명과 구급대원들의 오열을 번갈아 교차 편집해 즉각적이고도 압도적인 감정적 동요를 강제한다. 이때 관객은 라잡의 고통에 진정으로 연대하고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비극이라는 자극적인 스펙터클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구경꾼으로 전락한다. 수전 손택이 '타인의 고통'에서 경고했던, 타인의 재난을 구경거리로 전락시키는 포르노그래피적 소비가 스크린 위에서 자행되는 것이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서 예술이 취해야 할 태도는 고통의 1차원적인 전시가 아니다. 이를 일으킨 원인에 대한 집요하고도 구조적인 탐구여야 한다. 하지만 '힌드의 목소리'는 관객을 눈물 흘리게 만드는 가장 쉽고 자극적인 길을 택한다. 이 때문에 이 비극을 묵인한 국제 사회의 위선, 민간인 구급차마저 표적으로 삼는 군사 조직의 맹목적 폭력, 그리고 가자지구에서 자행되는 제노사이드의 본질이라는 진짜 질문들은 감정의 거대한 파도 뒤로 은폐된다. 분노해야 할 대상을 향한 날 선 고발은 사라지고, 오직 무력한 희생자를 향한 연민만이 극장을 채운다.
이 감정의 이면에는 더욱 우려스러운 지점이 있다. 바로 값싼 도덕적 면죄부의 기능이다. 관객이 충분히 슬퍼하고 공감했다는 사실만으로 참상에 대한 도덕적 채무를 다했다고 착각할 위험이 크다. 동정은 연대의 시작점일 수 있으나, 행동을 수반하지 않으면 현실을 오락으로 소비하는 위선에 그칠 수 있다.
영화 '힌드의 목소리' 스틸 컷
'힌드의 목소리'는 바로 이 함정에 빠졌다. 현재 진행형인 가자지구의 학살과 수많은 또 다른 라잡들의 고통을 직시하게 만드는 대신, 이미 과거가 돼버린 단일한 비극을 아름답고 슬픈 예술 작품으로 박제해 버렸다. 타인의 끔찍한 고통을 대상화해 예술적 성취로 포장하는, 가장 교활하고도 치명적인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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