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취재 현장에서는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이번엔 1-가라 사실상 끝난 것 아니냐"는 식이다.
농담처럼 흘려 말해도, 그 안에 담긴 인식은 가볍지 않다. 경쟁 상대를 얕보는 수준을 넘어, 유권자의 판단 자체를 너무 쉽게 여기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정승현 기자.
후보 기호는 개인의 성적표가 아니다. 원내 정당 후보의 번호는 의석수 순으로 정해지고, 기초의원 선거에서 같은 정당이 복수 후보를 내면 '1-가, 1-나'처럼 표시된다. 이런 앞 순번과 '가' 기호가 실제 선거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즉, 1-가는 개인이 이미 검증됐다는 뜻이 아니라 제도가 준 출발선의 이점에 가깝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감보다 겸손이다. 일부 후보가 이 번호를 받는 순간 선거는 이미 끝났다는 듯 움직인다면, 그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안일함이다. 선거는 숫자로 치러지지만, 정치는 태도로 평가된다.
당의 간판이 만든 우위를 자신의 경쟁력으로 착각하는 순간, 후보는 가장 먼저 경청을 멈추고 설명을 줄인다. 주민의 질문은 '나중에 답해도 되는 것'이 되고, 비판은 '견디면 되는 것'이 된다.
하지만 유권자는 생각보다 훨씬 예민하다. 공약의 밀도, 현장 민원에 답하는 태도, 토론을 대하는 자세, 작은 약속을 지키는 방식까지 다 본다. 정당 지지세가 좋을수록 오히려 후보 개인의 준비와 품격은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어차피 된다"는 사람과 "끝까지 검증받겠다"는 사람의 차이는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커진다.
특히 거대 정당 후보일수록 더 낮아져야 한다. 자신의 이름보다 먼저 당명을 보고 다가오는 표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 표를 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공천은 종착역이 아니라 출발선이고, 앞번호는 면허증이 아니라 책임의 무게다. 유리한 번호를 받았다는 이유로 긴장을 풀었다면, 그 순간부터 후보는 표를 얻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잃기 시작한다.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이 진짜 경계해야 할 것은 상대 진영의 공세보다 내부의 관성이다. "기호 1-가면 끝났다"는 생각은 선거를 쉽게 만들지 못한다. 다만 정치를 가볍게 만들 뿐이다. 선거는 번호로 시작할 수 있어도, 끝내는 것은 유권자의 판단이다. 기호 1-가는 당선증이 아니라, 더 낮아지라는 경고장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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