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에 거주하는 A씨는 구직 플랫폼에서 '카카오톡 상담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고 계약했다가 낭패를 봤다. 업무용 회선이 필요하다는 안내에 따라 상대방이 전달한 유심(USIM) 정보로 회선 3개를 개통했는데, 이후 자신도 모르는 발신 이력 수십 건이 발생한 사실을 뒤늦게 확인한 것이다. 카드 배송을 사칭하는 내용 등이 보이스피싱으로 의심됐다. A씨는 "상담 업무에 쓸 회선인 줄 알았고 1만원대 알뜰폰 요금제라 별생각 없이 개통했다"며 "누가 피해를 당했으면 어쩌나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A씨는 범죄를 의심한 직후 경찰에 신고했다.
고액 아르바이트나 부업을 미끼로 개인정보를 확보한 뒤 대포폰 개통에 악용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주로 스팸 문자 발송이나 보이스피싱 등 범죄 수단으로 쓰이는데, 명의자 본인도 모르는 사이 범죄에 연루되는 구조인 만큼 주의가 요구된다.
20일 경찰청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관련 대포폰 적발 건수는 2021년 4005건, 2022년 4867건, 2023년 4427건, 2024년 5251건, 2025년 5457건 등 최근 5년간 전반적으로 증가세를 보인다. 이 기간 검거 인원은 2만5426명, 적발된 대포폰의 수는 25만6000대에 달했다.
대포폰이나 대포통장을 만들기 위한 범죄 조직의 '고액 알바' 함정은 이미 흔한 일이 됐다. 포털 사이트에 고액 알바를 검색하면 휴대전화만 있으면 누구나 일할 수 있다는 소개와 함께 건당 9만9000원을 지급하겠다는 광고가 나온다. 상담 창구로 연락해온 구직자에게 대포폰을 개설하게 하거나 급여 입금용 계좌번호를 요구한 뒤 이를 범죄 수익금 창구로 사용하는 식이다.
대포폰은 범죄 조직이 사전에 확보한 유심 정보를 온라인으로 전달하면 구직자가 자신의 명의로 회선을 개통해 넘기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때 구직자에게 접촉하는 연락처도 대포폰일 확률이 높다. 주로 '법인 회선 개수 제한에 걸렸다' '태블릿 연결용 개인 회선이 필요하다' 등 설명으로 의심을 피한다. 특히 알뜰폰은 요금이 저렴하고 사업자가 분산돼 있어 단기간에 많은 회선을 개통·폐기하기 쉬운 구조인데 범죄 조직이 이 지점을 악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명의자의 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법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수사 당국은 타인에게 회선을 제공해 범죄에 사용되도록 한 경우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단순 아르바이트로 인식했다 해도 결과적으로 범죄 수단 제공이 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정상적인 채용 과정에서 유심 개통이나 계정 생성을 요구하는 경우는 없다"며 "이런 요구를 받으면 범죄 연루 가능성을 의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통신 명의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통신은 명의가 누구로 돼 있는지가 핵심"이라며 "유심이든 계좌든 휴대전화든 일단 명의를 제공하는 순간 그에 따른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면 지체하지 말고 수사기관에 자진 신고하거나 상담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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