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블랙스완.
소비자가 K콘텐츠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이 제작자나 자본의 국적이 아닌 콘텐츠에 담긴 한국적 정서와 이야기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14일 콘텐츠산업 동향 브리프 '소비자가 인식하는 K콘텐츠 요소'를 통해 이 같은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지난해 12월 전국 만 20~64세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K팝, 드라마·영화, 애니메이션 세 장르에서 K콘텐츠로 인식하기 위해 갖춰야 할 요소를 중요도 순으로 묻는 방식이었다.
결과는 세 장르에서 비슷하게 나타났다. K팝에서 1순위로 가장 많이 선택된 항목은 한국 정서·상징·메시지(13.55%)였고, 한국 저작권(IP) 보유(12.90%), K팝으로 분류(11.55%), 주요 아티스트 한국인(11.00%)은 차례로 뒤를 이었다. 드라마·영화에서는 한국 문화·정서·상징(11.45%), 한국 IP 보유(9.30%), 한국 콘텐츠로 분류(8.70%) 순이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한국 IP 보유(12.40%)가 1위지만, 응답 순위를 1~3순위까지 확대하면 한국 배경·인물·전통·상징 포함(11.72%)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전통적으로 콘텐츠 국적의 핵심 기준으로 여겨져 온 '한국이 주요 투자자'는 K팝에서 9위, 드라마·영화에서 11위, 애니메이션에서 10위로 하위권에 그쳤다.
애플TV+ 드라마 '파친코' 스틸 컷.
이 같은 경향은 실제 콘텐츠 사례 분석에서도 확인됐다. 벨기에·인도·독일·미국 출신 멤버로 구성된 한국 기획사 소속 걸그룹 블랙스완을 K콘텐츠로 인식한다는 응답은 61.65%에 달했다. 응답자들은 주된 근거로 한국 정서·상징·메시지(14.84%)를 꼽았다. 반대로 K콘텐츠가 아니라고 본 응답자들은 주요 아티스트 한국인의 부재(16.04%)를 이유로 들었다.
일제강점기와 재일조선인 서사를 다룬 애플TV+ 드라마 '파친코'는 IP와 자본, 제작·배급 모두 해외 구조임에도 응답자의 71.30%가 K콘텐츠로 인식했다. 근거로는 한국 문화·정서·상징(12.13%)과 주요 언어 한국어(9.40%)를 들었다. 반면 K콘텐츠가 아니라고 응답한 이들은 한국 IP 보유(12.02%)와 한국 제작사 주도(12.02%)의 부재를 판단 잣대로 제시했다.
한국을 주 배경으로 하지만 주 언어가 영어인 넷플릭스 드라마 'XO, 키티'의 K콘텐츠 인식률은 40.65%로, 네 사례 가운데 가장 낮았다. K팝 세계관과 한국 배경을 전면에 내세운 해외 제작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67.25%가 K콘텐츠로 봤다. 한국 이야기·세계관·캐릭터 기반(13.46%)과 한국 배경·인물·전통·상징(12.34%)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콘텐츠 선택 시 국적을 고려한다는 응답자(58.75%)는 배우·아티스트·제작진 등 인적 요소를 중시했다. 반면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는 응답자(41.25%)는 한국 문화·정서·서사 등 내용 요소를 K콘텐츠의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더 강했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스틸 컷
연구원은 이번 결과가 양면의 시사점을 갖는다고 진단했다. 기획 단계에서 한국적 요소를 전략적으로 담으면 글로벌 확산에 유리하다는 점은 기회다. 그러나 해외 창작·제작사도 같은 방식으로 K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 소비자가 이를 K콘텐츠로 받아들이면 국내 제작사의 입지는 그만큼 좁아진다.
이에 연구원은 국내 콘텐츠 제작 기업을 대상으로 한 제작비 지원 및 세제 혜택 확대와 함께 한국 전통문화·역사·상징을 정리한 문화 원천 콘텐츠 아카이브 구축, 글로벌 AI 모델이 한국 문화를 왜곡 없이 학습할 수 있는 정제된 데이터 구축 등을 정책 과제로 제시했다.
남유원 콘텐츠연구본부 연구원은 "소비자들이 한국 문화와 정체성을 기반으로 콘텐츠 국적을 판단하는 경향이 확인된 만큼, 콘텐츠 기획 단계에서 이러한 인식 요소가 효과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용관 한류경제연구센터장은 "한국을 소재로 한 글로벌 콘텐츠 제작·유통 환경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한국 문화의 출처와 정체성을 보다 명확히 하고, 한국 문화가 왜곡 없이 활용될 수 있는 제도적·산업적 여건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