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를 자동차 회사로만 읽는 방식은 이제 조금 낡아 보인다. 엔진과 차종, 판매량과 점유율의 언어로는 이 회사를 끝까지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바뀐 자리를 '피지컬 AI'라는 말로 묶어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행어가 아니다. 화면 속 AI가 아니라 공장과 도로와 물류 현장에서 몸을 얻는 AI, 다시 말해 데이터가 로봇이 되고 생산이 학습의 장이 되는 산업의 새 질서다. 질문도 거기서 시작된다. 현대차는 이제 무엇을 만드는가. 차인가, 시스템인가, 혹은 산업의 기반 자체인가.
이 책의 힘은 미래를 과장된 청사진으로 부풀리지 않는 데서 나온다. 저자는 정의선 리더십을 단순한 세대교체 서사로 소비하지 않고, 선대의 '개척'과 '집행' 이후에 등장한 또 다른 운영 감각으로 읽어낸다. 연결, 조율, 수평, 경청 같은 말은 자칫 기업 홍보 문구처럼 들리기 쉽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것이 왜 지금의 현대차에 필요한 경영 문법인지 비교적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자동차 회사가 소프트웨어와 로봇, 수소와 데이터센터를 한 전략 안에 묶으려면, 한 사람의 직관보다 서로 다른 기술과 조직을 엮는 능력이 먼저여야 하기 때문이다. '차 만드는 아저씨'라는 낮은 자세의 언어와 피지컬 AI라는 높은 비전 사이의 간극도 바로 그 리더십의 방식으로 메워진다.
눈에 띄는 대목은 현대차의 변화를 기술 낙관론으로만 밀어붙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전환이 왜 중요한지, 자율주행이 왜 생각보다 더디게 가는지, 그 병목이 결국 인재와 규제, 데이터의 문제로 귀결되는지 짚는 장면에서는 산업 기사로 단련된 저자의 감각이 드러난다. 차는 더 똑똑해지는데, 그 차를 굴릴 생태계는 그렇게 빨리 똑똑해지지 않는다. 한국에서 차량용 소프트웨어 인재를 구하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라는 현실, 실패에 냉담한 사회적 분위기, 규제가 기술보다 먼저 길을 막는 상황을 함께 놓고 보면 미래는 선언이 아니라 병목 관리의 문제라는 사실이 또렷해진다. 낙관의 언어로 문을 열지만, 곧장 구조의 저항을 들이민다는 점에서 이 서술은 믿을 만하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 2022 ces에서 미국 로봇 제작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폿’과 함께 등장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글로벌 경쟁을 다루는 대목에 이르면 시야는 더 넓어진다. 테슬라가 자율주행과 AI에서, BYD가 기술·생산·가격의 삼박자에서, 도요타가 제조의 축적과 도시 실험에서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비춰보면서 현대차는 비로소 상대평가의 자리에 놓인다. 특히, BYD를 둘러싼 서술이 중요하다. 중국 시장이 단지 '어려운 시장'이 아니라, 전기차와 제조 혁신의 속도를 다시 써버린 장소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현대차 서사는 곧장 긴장감을 얻는다. 이 회사의 미래는 내부 의지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중국의 속도, 미국의 질서, 소프트웨어 인재의 이동, 에너지 체제의 재편 같은 외부 변수와 함께 흔들린다. 기업 성공담으로 미끄러질 수 있는 자리에서 산업 전쟁의 판을 끝까지 놓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재를 묶어낸 책답게 잘 읽힌다. 다만 몇몇 대목에서는 판단이 너무 빨리 결론 쪽으로 간다. 정의선 리더십을 중심축으로 세운 선택은 맞지만, 그만큼 현대차 내부의 구조적 한계와 실패의 대가를 더 집요하게 밀어붙였더라면 글은 더 단단해졌을 것이다. 그래도 남는 것은 분명하다. 현대차를 '차 잘 파는 회사'에서 '데이터와 로봇, 에너지와 제조를 함께 설계하는 회사'로 다시 보게 만든다. 산업이 바뀔 때 먼저 낡는 것은 공장보다 분류법이다. 이 책은 그 분류법을 새로 쓴다.
결국 '현대차 피지컬 AI 혁명'은 한 기업을 칭찬하는 데 머무는 글이 아니다. 한국 제조업이 어디까지 변신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기록에 가깝다. 자동차는 여전히 출발점이지만, 끝에 남는 것은 차가 아니라 체계다. 도로 위의 이동, 공장의 자동화, 로봇의 학습, 수소 인프라, 데이터 파이프라인이 한 회사의 미래라는 이름 아래 연결되는 장면이다.
그래서 이 책은 현대차에 관심 있는 독자만을 향하지 않는다. 이제 산업의 경쟁력이 무엇으로 정의되는지, 제조업이 어떻게 AI와 만나는지, 한국 기업이 기술의 하청이 아니라 질서의 설계자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읽을 이유가 충분하다. 현대차의 미래를 말하지만, 더 정확히는 제조업의 다음 문장을 먼저 써본 셈이다.
현대차 피지컬 AI 혁명 | 우수연 저 | 시크릿하우스 | 3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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