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쓸어담는 저임금 외국인…인력시장은 아직도 '쌀쌀'

건설기성 14년 만에 최대폭으로 하락
일감 줄었는데 값싼 외국인 인력 늘어

지난 13일 새벽 4시20분께 인력사무소 70여곳이 모인 서울 남구로역 삼거리. 이곳에 나온 지 벌써 20년이 됐다는 이천식씨(56)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빈손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그래도 난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한 달 벌이가 200만원도 안 된다"고 털어놨다.


13일 오전 4시30분께 서울 구로구 인력사무소 앞 일감을 구하려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있다. 이지예 기자.

13일 오전 4시30분께 서울 구로구 인력사무소 앞 일감을 구하려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있다. 이지예 기자.

남구로역 삼거리는 한때 일용직 노동자 2000명 이상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던 곳이었지만, 이날 인력사무소를 찾은 발걸음은 150명도 채 되지 않았다. 형광 조끼를 입고 몸을 풀던 이모씨(68)는 "일자리가 10곳 중 8곳은 없어진 것 같다"며 "손주들에게 줄 용돈이라도 벌고 싶어서 매일 나오고 있는데 일감이 없어서 고민"이라고 말했다. '무료 커피'로 몸을 녹이던 김덕기씨(65)는 "일이 없을 게 뻔하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나와 봤다"며 고개를 저었다.

오전 5시께 서서히 어스름이 걷히자 삼거리 횡단보도는 한국인과 외국인을 가르는 '경계선'이 됐다. 비교적 한적한 쪽이 '한국인 구역', 건너편은 불법 체류자 등이 뒤섞인 '외국인 구역'이란 게 일감을 구하러 나온 이들의 설명이다. 평균 15만원이던 하루 품삯을 낮춰서라도 일을 따내려는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나면서 경계가 더욱 또렷해졌다. 한 노동자는 "오야지(인력공급업자) 차들이 외국인 구역 쪽으로만 간다"며 "현장에 나오는 절반 이상은 중국인"이라고 설명했다.


13일 오전 5시께 서울 구로구 인력사무소 앞 한국인 구역에 있는 한 노동자가 사람이 몰려있는 외국인 구역을 바라보고 있다. 이지예 기자.

13일 오전 5시께 서울 구로구 인력사무소 앞 한국인 구역에 있는 한 노동자가 사람이 몰려있는 외국인 구역을 바라보고 있다. 이지예 기자.

건설 경기 침체로 노동 현장의 일감도 빠르게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값싼 노동력'을 앞세운 외국인 노동자가 인력시장을 장악하면서 일자리 경쟁이 한층 치열해진 모습이다. 이 같은 현상이 불법 체류자 고용이나 일당 하락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7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해 1월 건설기성(건설업의 시공 실적)은 전월 대비 11.3% 감소했다. 14년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이다. 건설기성이 줄어든 건 신규 착공이 위축된 영향이 크다. 금리 상승과 부동산 경기 둔화로 민간의 건축 투자가 감소하면서 공사 물량 자체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공사 물량이 줄어들면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건 현장의 노동자다.

노동 현장에선 일감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 일감은 줄었지만, 외국인 노동자 등 인력 공급은 오히려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예전에는 말이 잘 통하는 한국인 위주로 인력을 뽑았지만 요즘은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일이 조금 서툴고 말이 잘 안 통해도 임금이 낮기 때문에 외국인을 선호하는 경향"이라고 전했다.

일감 쓸어담는 저임금 외국인…인력시장은 아직도 '쌀쌀'

경기 침체 국면에서 외국인 노동력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아질 경우 시장 왜곡이 발생할 가능성도 우려된다.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은 "건설 경기 악화로 기업이 어려움을 겪을 순 있지만, 외국인 인력을 단순히 인건비를 낮추는 수단으로 활용해선 안 된다"며 "내국인 노동자에 타격을 주는 것은 물론, 시장 질서를 흔들 수 있어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노동자의 부담을 완화해줄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일용직 노동자가 당장의 생계 부담 때문에 최소한의 사회 안전장치인 '4대 보험 의무화'나 '배치 전 건강검진'까지 문제 삼는 건 노동시장의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방증"이라며 "고용보험이나 건강보험 지원 등을 통해 정책적으로 노동자의 부담을 완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지예 기자 eas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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