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중독을 신경세포 조절로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시됐다. 마약은 중독성이 강해 재발 위험성이 매우 높다. 그간에는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충동을 조절하는 '전전두엽 피질(PFC)'의 기능 저하가 지목됐다. 하지만 최근 특정 신경세포 회로의 불균형이 중독 재발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이 규명돼 정밀 타깃 치료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됐다.
AI 생성 이미지. KAIST
KAIST는 뇌인지과학과 백세범 석좌교수와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샌디에이고 대학(UCSD) 임병국 교수 연구팀이 전전두엽 내 특정 억제성 신경세포의 코카인 중독 행동 조절 핵심 원리를 규명했다고 9일 밝혔다.
공동연구팀은 뇌에서 다른 신경세포의 활동을 억제해 신경 신호의 균형을 조절하는 '파발부민 양성(Parvalbumin-positive·PV) 억제성 신경세포'에 주목, 이 세포가 뇌의 흥분 신호를 조절하는 일종의 '브레이크 게이트(brake gate)' 역할을 하는 동시에 금단 과정에서 나타나는 마약 탐색 행동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을 확인했다.
뇌의 전전두엽 피질은 흥분 신호와 억제 신호가 균형을 이룰 때 충동을 억제하는 '브레이크'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공동연구팀은 만성 약물 노출이 이러한 균형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쥐를 대상으로 코카인 투여 실험을 진행했다. 전전두엽 내 억제성 신경세포가 언제 활성화되고 하위 뇌 영역으로 어떻게 신호를 보내는지 추적하기 위해서다.
실험 결과 전전두엽 피질 내 억제성 신경세포의 60~70%를 차지하는 파발부민 세포는 쥐가 코카인을 찾으려 할 때 활발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약물을 찾지 않도록 훈련하는 '소거 훈련(extinction training)'을 진행하면 이 세포의 활동은 확연히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파발부민 세포의 활동 양상이 중독에 의해 고정되는 게 아니라 소거 과정을 통해 다시 조절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공동연구팀은 신경 활동을 인위적으로 조절해 파발부민 세포의 활동을 억제하는 실험도 거쳤다. 이 결과 쥐의 코카인 탐색 행동은 크게 감소하는 것이 확인됐다. 반대로 이 세포를 활성화하면 소거 과정 이후에도 약물을 다시 찾는 행동이 지속됐다.
이러한 효과는 설탕물 등 일반적 보상에는 나타나지 않는 행동으로 마약 중독 행동에서만 특이적으로 관찰됐다. 파발부민 세포가 마약 중독 행동을 선택적으로 조절하는 데 관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지점이다.
(왼쪽부터) UCSD 생명과학과 정민주 박사, UCSD 생명과학과 임병국 교수, KAIST 뇌인지과학과 백세범 석좌교수. KAIST
공동연구팀은 파발부민 세포의 조절 작용이 어떤 뇌 회로를 통해 이뤄지는지도 확인했다. 이 결과 전전두엽에서 시작된 신호는 보상과 관련된 핵심 뇌 영역인 복측피개영역(Ventral Tegmental Area·VTA)의 보상회로로 전달되며 이 경로는 마약을 '다시 찾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중독 행동 조절의 핵심 통로가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때 파발부민 신경세포는 이 신호의 흐름을 조절해 도파민(Dopamine) 신호에 영향을 주며, 중독 행동을 유지 또는 억제를 결정하는 일종의 '조절 스위치' 역할을 한다는 게 공동연구팀의 설명이다.
바꿔 말해 중독 재발은 전전두엽 전체의 기능 저하 때문이 아니라 파발부민 신경세포가 전전두엽과 보상 회로 사이의 신경 경로를 어떻게 조절하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백 석좌교수는 "이번 연구는 약물 중독이 특정 신경세포(파발부민 세포)와 하위 신경 회로의 조절 균형이 붕괴되면서 나타나는 회로 (불균형) 문제임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며 "파발부민 세포가 중독 행동의 '게이트' 역할을 한다는 발견은 향후 마약 중동의 정밀 표적 치료 전략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UCSD 정민주 박사가 제1 저자, UCSD 임병국 교수와 KAIST 백세범 석좌교수가 공동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연구 결과(논문)는 지난달 26일 신경과학 분야 학술지 '뉴런(Neuron)'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