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맞고도 '정조대왕' 구경에 싱글벙글…7㎞ 행렬까지

28일 2025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비 오는 광화문에 시민 1000여명 모여
정조대왕 등장에 스마트폰 들고 감탄
강우에 행사 취소됐지만 '인증샷' 웃음

"초엄(初嚴)이오!" "우와~"


지난 28일 토요일 아침 바짓단을 적실 만큼 비가 내리는 악천후에도 갓과 도포를 차려입은 시민들이 형형색색의 우산을 쓰고 경복궁 앞에 모여들었다. '2025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인 '엄고(嚴鼓)' 의식이 관원의 입으로 널리 퍼졌고, 시민들의 탄성이 함께 울렸다. 이윽고 웅장한 대취타 소리와 함께 정조대왕과 그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등장하자 시민들은 스마트폰에 맺힌 빗방울을 닦아가며 촬영에 집중했다.

'2025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시작을 알리는 출궁의식이 경복궁에서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 제공

'2025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시작을 알리는 출궁의식이 경복궁에서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 제공


이날 서울시를 비롯해 경기, 수원, 화성 각지에서 시민 5000여명이 모여 230년 전 정조가 걷던 효행길을 현대에 소환했다.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은 정조대왕이 1795년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와 함께 융릉으로 나섰던 '원행(園幸)'을 현대에 되살린 대규모 역사문화축제다.


서울에는 1100여명의 시민이 모였다. 이번 행사에 함께하는 시민들은 조선시대 왕의 행차를 보기 위해 모였던 백성을 뜻하는 '관광민인(觀光民人)'으로 칭해졌다. 일반 참가자들은 서울을 상징하는 해치 캐릭터를 닮은 분홍 모자와 상의를 입었고, 유생 참가자들은 청색 도포에 갓을 써 조선시대 백성의 모습을 재현했다. 천막에 비가 고여 쏟아질 만큼 많은 비가 내렸지만, 시민들은 색다른 복장에 '인증샷'을 찍으며 축제를 즐겼다. 옛 복장에 흰 모조 수염까지 입가에 걸자 한 무리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유생 복장을 나란히 갖춰 입은 연인 김연재씨(29)와 이호성씨(34)는 각각 송파구, 영등포구에서 빗길을 뚫고 축제에 참여했다. 김씨는 "전에 마라톤이나 걷기 대회에 참석할 정도로 걷는 것을 좋아해서 이번 행사도 신청하게 됐다"며 "노들섬까지 걸을 예정인데, 비가 와서 아쉽지만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2025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참석자들이 경복궁에서 진행된 출궁의식을 관람하고 있다. 2025.09.28 김영원 기자

'2025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참석자들이 경복궁에서 진행된 출궁의식을 관람하고 있다. 2025.09.28 김영원 기자


특히 역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축제이니만큼 아이들과 나들이 겸 교육 목적으로 참석한 가족이 많았다. 8살 아이, 남편과 함께 온 이미라씨(40)는 "자주 있는 행사가 아니니 아이와 추억으로 남기려 한다"며 "아이와 함께라 잘 모르겠지만, 우선은 노들섬까지 최대한 걸을 생각"이라고 전했다. 행사 장소를 지나서도 이씨는 광화문 광장 동상을 가리키며 "세종대왕이다" "이순신 장군이야"라고 아이에게 속삭였다.


출궁 의식을 마치자 시민들은 세 번 울리는 북소리와 함께 "출정하라"를 외쳤다. 시작된 행렬은 광화문 광장부터 노들섬까지 7㎞ 구간으로 이어졌다. 각자 빗물이 발에 고이지 않도록 샌들을 신거나, 편안한 운동화 위로 빗물을 막는 방수커버를 씌우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비에 대응했다. '몸이 좋지 않은 경우 대중교통을 이용해 노들섬까지 이동해도 좋다'는 안내도 반복해 흘러나왔다.


행렬은 서울 구간 외에도 △안양~수원 △동탄~황계동 구간까지 총 31.3㎞의 거리로 진행됐다. 특히 본 행렬이 정조효공원에 도착한 뒤 융릉까지 이어지는 '산릉제례 어가행렬'은 오직 화성 구간에서만 진행됐다.


이날 강우로 인해 서울 구간에서 정조대왕과 관원, 말이 함께하는 전통 행렬은 취소됐다. 행렬 중 지루하지 않도록 덕수궁, 서울역, 숙대입구, 삼각지역, 용산역 구간마다 준비된 엿장수 공연과 취타대 등 공연도 진행되지 않았다. 약 2시간을 걸어 행렬 종착지인 노들섬에 도착한 시민들은 기념품, 간식, 음료와 함께 휴식을 취한 뒤 귀가했다.



'2025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참석 시민들이 광화문을 출발해 노들섬까지 행렬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2025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참석 시민들이 광화문을 출발해 노들섬까지 행렬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김영원 기자 fore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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