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의 장시간·저임금 노동 구조를 바꾸기 위한 행보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주 4.5일제 도입과 포괄임금제 금지 등을 추진해 실질적인 노동시간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다. 노동계와 사측, 정부는 앞으로 3개월간 관련 협의를 진행한다. 관건은 '임금 보전 없는 단축은 무의미하다'는 노동계의 주장과 '업종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크다'는 경영계의 우려를 얼마나 속도감 있게 조율하느냐에 달렸다는 평가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3일 노사정 대표와 전문가 17명이 참여하는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을 공식 출범했다. 추진단은 향후 3개월간 현장 간담회와 공개 토론회를 거쳐 연내 최종 로드맵을 발표할 계획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연간 노동시간을 OECD 평균인 1742시간 수준으로 줄일 방침이다. 지난해 한국의 노동시간은 1872시간으로 OECD 평균보다 130시간 많다.
정부는 우선 내년부터 일부 사업장을 대상으로 주 4.5일제 시범사업을 준비 중이다. 중장기적으로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사전 작업인 셈이다. 주 4.5일제는 주 1회 반일 근무, 주 35시간제, 격주 주 4일제 등 다양한 형태로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제도다. 핵심은 임금 삭감 없이 근로자와 기업 모두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별로 일부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는 이미 부분적으로 시행 중이다.
노동계는 정부 방침에 환영하는 분위기다. 주 4.5일제가 장시간 노동을 줄이고, 저출생과 소비 침체 문제 등을 함께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4.5일제 추진 기업에 세액공제, 인건비 지원 등 인센티브를 통해 자발적 도입을 유도하겠단 방침이다. 노동부가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한 로드맵에 따르면 우선 연내 주 4.5일제 지원 사업과 제도적으로 노동시간 단축 법안을 마련하고, 2027년 이후 주 4.5일제를 본격 확산시킬 것이란 계획이다.
이에 맞춰 내년 포괄임금제 금지 입법도 추진한다. 포괄임금제는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실제 근로시간과 무관하게 일정액으로 사전 지급하는 제도인데, 노동계는 이를 장시간 노동의 주범이라고 규정해 왔다. 노동계는 실제 현장에서 초과 근무를 하고도 포괄임금제를 이유로 정액 지급하는 탓에 추가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역시 근로시간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 사용자의 근로시간 기록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한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4일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 킥오프 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문제는 산정 범위다. 정부는 삼성, 현대차 등 대기업이 활용하는 '고정 OT(Over Time)' 제도를 포괄임금제 범주에 포함해 금지 대상으로 삼을지 들여다보고 있다. 고정 OT는 실제 근로시간 산정과 상관없이 정해진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근로자들이 근로시간 중 흡연 및 개인 용무 시간 등의 정확한 측정을 위한 보완책 마련도 필수적이다.
경영계는 노동환경 변화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하면서도 정부 주도로 근로시간 단축이 속도감 있게 추진될 경우 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동시간 단축이 곧 생산성 저하와 직결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인건비 상승도 고려해야 한다. 영세기업의 경우 주 4.5일제를 도입하면 인력 충원이 불가피해지고, 이는 고스란히 비용 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소상공인연합회는 주 4.5일제 도입에 앞서 주휴수당 같은 기존 제도부터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포괄임금제 폐지로 인해 근로시간 관리와 기록 의무가 강화되면 행정 비용과 노사 갈등이 되레 증가할 가능성도 크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장시간 노동 해소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줄어드는 근로시간을 시장 상황에 맞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연성이 중요하다"며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일정 연봉 이상의 고위직·전문직·관리직 등 고소득 사무직 근로자에게 근로시간 규제와 초과근로수당 지급 의무를 면제하는 제도) 등 보완책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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